나의 안거 |
안거의 계절입니다. 스님들은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함께 모여 수행 정진하는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갑니다. 안거安居는 부처님이 계실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우기에 비를 피하기 위해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안거는 정진이면서, 나를 쉬게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더위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요즘. 마음을 챙기기 어려운 날씨가 지속될 때, 고요한 숲으로 들어가 마음 살피는 짧은 안거를 행해보면 어떨까요. 불광이 추천하는 고요한 절과 녹음 짙은 숲. 홀로 안거하기 좋은 곳입니다.
01 가평 백련사 유윤정 |
해보다 먼저 일어난 나는 지금 여기
칠흑 같은 고요가 내려앉은 산사에서는 내 숨소리만이 내가 있음을 알아채게 한다. 새벽 4시. 도량석을 도는 목탁 소리가 적요를 깨웠다. 뎅뎅 범종 소리는 도량 맞은 편 수바위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범종 소리가 어둠을 밀어내면 여명이 밝아오고 대웅전에서 예불이 시작된다. 예불을 마치고 미륵전으로 향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강원도 고성 화암사(주지 웅산 스님)의 아침이다.
화암사는 금강산 1만 2천봉 8만 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 봉우리인 신선봉의 첫 암자다. 신라시대에 진표 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한국 전쟁 때 소실됐다가 다시 중건했다. 낮 기온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음에도, 몸을 오소소 떨리게 하는 시원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했다. 바다에서 오는 해풍 덕에 일 년 며칠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시원하다.
“염소도 방목하고 풀어놓으면 누가 주인인지 모릅니다. 마음도 방목하면 내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이 자리에서 쉬면서 내 마음이 여기 있다는 것을 바라보세요.”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석상 스님은 이곳에서 휴식하며, 자유롭고 자율적이고 자연스럽게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다만 잊지 않을 것은 자기 마음을 방목하지 않고 관조하기.
“저는 학생이고 친구는 이직하는 중입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지 몰랐어요. 도심에선 이런 느낌 받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예불로 하루를 시작하고 찻집 옆 벤치에 앉아 수바위를 바라보면 느낌이 달라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다가 우연히 들어온 절에서 템플스테이 중인 전병훈(32, 서울 성북구), 이다빈(29, 서울 강북구) 씨는 여행 계획을 바꿔 4일째 머물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에 들어와 언제 돌아갈지는 정하지 않았다고 한 김우열(28, 부산 금정구) 씨는 ‘정신 디톡스’ 중이다.
“빠르게 달리기만 하는 도심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 여유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하고 떠오르는 해도 보고, 108배도 해보고 채식도 해요. 이걸 다 해도 하루가 진짜 깁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정말 많습니다. 고요한 절에서 휴대폰도 꺼두고 경쟁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안에서 재정비하는 거죠. 여유를 안고서 돌아가고 싶어요.”
화암사는 고즈넉한 도량 외에도 자연경관이 훌륭하다. 화암사 남쪽 300m에는 도량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뚝 솟은 수바위가 있다. 도량에서 15분이면 수바위에 오를 수 있다. 진표 율사를 비롯한 고승들이 이 바위에서 수도를 했다. 수바위를 지나 참나무 소나무 빼곡한 숲길을 더 올라가면 신선봉에 오르는 산행길이 펼쳐진다. 수바위, 울산바위, 신선대 등이 절경을 이룬다. 다시 화암사까지 돌아오는 길은 약 4.1Km. 두세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미륵전으로 향했다. 탁 트인 바다와 그보다 더 넓은 하늘이 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짙은 초록의 땅 위에 서 있는 내가 있다.
머리 위 걸림 없이 높게 떠오른 해를 보며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느낀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로지 내가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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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화암사
강원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길 100
033-633-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