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결전(黃山決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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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결전(黃山決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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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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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원효성사

성충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필을 들어 상감에게 진언하였다.

"신은 상감마마를 보필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아뢰오니 지난 날의 총명을 되찾으사 실천에 옮겨 주시옵소서. 미구에 나당연합군이 침공해 올 것이오니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탄현은 적은 군사로 대군을 막을 수 있는 요새이오니 속히 수천의 군사를 보내시어 방어에 임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만일 당병이 내침하오면 절대로 사비수(泗 水·白馬江)를 넘지 못하도록 강 연안을 굳게 방비하소서.

지금 국고가 바닥이 나고 연년 동안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있으니 군사를 모집할 방도가 막연하옵니다. 하오나 계백 장군에게 대권을 맡기시어 친위군과 민병을 합하여 조련하도록 하시고 탐라국과 왜국에 사신을 보내시어 원병을 청하소서.

신은 비록 먼저 죽사오나 이 마지막의 헌책을 써주신다면 눈을 감고 고이 잠들겠나이다."

만고의 충신 성충은 이 글을 올리고 보름을 굶다가 의자왕 십육 년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상감은 성충의 마지막 올린 글도 본체 만체 하고 묵살해 버렸다.

성충이 죽자 뜻있는 신하들은 목을 놓아 통곡했고 자결하여 성충의 뒤를 따른 사람도 여럿 있었으며 간신배를 제하고는 모두 벼슬을 내놓고 낙향하고 말았다.

충신들이 대궐을 떠나자 몇몇 간신배들은 도리어 잘 되었다는 듯 저희들 마음대로 정사를 처리하였고 봄부터 사비수에 배 띄워놓고 즐기던 왕은 여름이 되자 아예 궁에 돌아갈 생각을 잊고 배에서 미녀들의 숲에 싸여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태로 칠월을 맞은 어느날.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壤寺)의 경내에 모셔진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천둥이 치듯 울더니 마구 흔들려서 도괴 직전에 이르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어 다음 날은 백석사(白石寺)의 대강단(大講壇)이 흔들려서 벽의 흙이 떨어지고 기와가 무수히 땅에 떨어져 깨어졌다.

백석사의 법주(法主)인 도심 화상(道 和尙)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며 충간하였다.

"상감마마 불사리탑이 흔들리고 대강단이 흔들린 것은 미구에 닥칠 이변을 예고함입니다. 저번에 마마께서 사비수에 배 띄우시던 날 말만한 고기가 죽어 떠내려간 것이나 사비수를 수호하는 용이 현신하여 파도를 친 것도 이변(異變)을 예고해 주는 일이옵니다. 이러한 이변을 목격하시고도 방관하신다면 칠백년 사직을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오니 통촉하소서."

"성충이 그토록 과인을 괴롭히더니 이제는 큰스님도 괴롭힐 작정이시오? 모든 일은 과인이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가셔서 강당 수리나 잘하시오. 곧 국고에서 수리비를 보내리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쪽 해안선을 지키는 군사가 급보를 아뢴다.

"아뢰오, 어젯밤 당나라군이 거미떼같이 상륙하였소."

"뭘하러 왔다더냐?"

"그야… 우리나라를…."

"음… 알았다. 물러가 있거라."

조금 뒤에 이번에는 대둔성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아뢰오. 신라군 오만명이 탄현을 넘었소."

"응? 신라병이?… 누가 인솔하였다더냐?"

"신라왕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익접 대군을 휘동하고 진격한 줄로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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