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미륵구세도량 도솔산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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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미륵구세도량 도솔산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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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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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1 위치와 창건 배경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백제시대의 고찰(古刹) 선운사(禪雲寺)는 위치한다.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黔丹) 화상에 의하여 창건 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사찰

규모는 산내에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당우(堂宇), 24개소의 수행처가 산중 곳곳에 있었다고 하며, 3천여 승려가 상주할 만큼 대단히 큰 거찰(巨刹) 이었다고 사적기(寺跡記)에는 전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볼때 정확한 기록인지는 의심이 간다. 일설에는 위덕왕 28년(581년) 창건설이 있는가 하면 창건조 검단 화상에 대한 인적사항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산 이름이 도솔산이라는 점과 산내 암자인 도솔암 내원궁의 현판, 그리고 미륵장육마애불상에서 사찰 창건의 연유와 당시의 역사적 주변 상황에서 창건의 뜻을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다.

 5세기 경, 우리나라는 3국(신라, 백제, 고구려) 이 한창 세력 다툼으로 계속되는 전쟁과 화친, 배신 등으로 자국(自國)의 이권(利權)을 도모하고 있을 때이다. 또한 백제로서는 26대 성왕이 신라진흥왕과의 싸움에서 패사(敗死)하자 그 아들 위덕왕이 즉위하면서 무왕의 원수를 갚고자 신라와 자주 전쟁을 할 때이다.

 

 이 무렵, 신라와 백제는 미륵신앙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선운사가 창건 되었다는 577년은 백제가 일본으로 불교를 전하면서 경(經), 론(論), 율사(律師), 비구니, 주금사(呪禁師), 불공(佛工), 사장(寺匠)등을 보냈고, 수년 후에는 일라(日羅) 스님이 건너가고 또 불상과 미륵불상을 일본에 보낼 만큼 미륵신앙은 현세 구복적인 측면에서 지대하였다.

 이러한 주변환경으로 보아 당시에 미래 용화세계의 하강을 염원하고 미륵불의 출현을 기원하면서 호국안민(護國安民), 구복(求福)의 뜻에서 선운사를 창건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미륵불이 하늘에서 교화하고 있는 도솔천 내원궁을 생각하고 산 이름을 도솔산이라 명명하지 않았을까.

  2 중창 중수

 선운사가 창건 된 후— ,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일, 이어서 고려조의 건국 등, 이 사찰은 오래도록 방치된 채 폐사 되어 1기의 석탑만 옛 절터를 지키고 있었다 한다.

 

 고려조 27대 충숙왕 5년(1318년) 효정(孝正)선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호남 제일의가람으로 일신하였다고 한다.

 조선조 태종 7년(1407년)에는 많은 사찰을 폐사시키면서도 선운사만은 계속 조계종 사찰로 존속시킬 만큼 사찰의 위세는 대단하였다.

 조선조9대 성종 14년(1483년)에는 행호(幸浩) 선사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德原君)의 시주로 퇴락된 사찰을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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