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백담사 수련원장 백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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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백담사 수련원장 백거 스님
  • 김성동
  • 승인 2017.06.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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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가장 친한 사람이 되세요”
백거스님/ 사진 : 최배문

“스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인사요? 우리 안아볼게요.”

백담사 템플스테이 사무실에서 만난 백거 스님과의 첫 대화다. 스님은 나와 사진작가를 보더니 팔을 벌려 안았다. 갑작스러운 ‘안아주기’에 나는 주춤거렸고, 사진작가는 웃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안으면 함께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있고, 가만히 안기거나, 뻘쭘한 이가 있어요.”

작은 얼굴에 단단한 느낌이다. 역광의 얼굴에 눈동자가 먼저 보였다. 맑고 깊었다. 비구니스님들을 만나면 가끔씩 이런 눈동자를 본다. 백거 스님(48). 10년 전 백담사에 온 이후 스님이 이끌었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7만 6천여 명이 참여했다. 2014년 템플스테이 최우수 운영사찰로 선정되었고, 2015년에는 여성가족부 청소년수련활동 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 그 중심에 백담사 템플스테이 수련원장 백거 스님이 있다. 1990년 12월 천안 제화사로 출가해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를 졸업했다. 현재 동방불교대학원 대학교에서 호흡명상과 청소년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 7만 6천여 명과 함께한 스님

- 템플스테이를 10년 정도 이어오셨습니다. 대중들과 교감이 많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대중들과 함께 하면서 정말 우리 국민들이 치열하게 사는구나, 놀랐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애틋합니다. 대부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를 해주고,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 스님께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제가 동네 아이들에게 ‘호흡명상’을 해주러갑니다. 명상 끝나고 어떤 아이에게 상담을 합니다. ‘○○야, 지금 너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이 뭐지? 누가 너를 제일 힘들게 하지?’ 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스님,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요.’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이걸 듣고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만났던 나를 이 아이도 만난 겁니다. 기특하고 예쁘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랑 가장 친하라고.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하라고. 우리는 화가 나면 마음을 닫습니다. 근데 사실은 자기를 알아 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불편한 말을 하면, 내 몸의 세포가 닫히고 몸이 굳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아, 나는 이런 말에 굉장히 민감하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누구는 못된 점을 하나씩 타고 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 스님이 말씀하는 호흡명상은 어떤 것인가요?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겁니다. 화가 났을 때 호흡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평정하게 됩니다. 자신의 호흡을 그냥 관찰합니다. 이것은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평정을 찾게 되면 답을 빨리 찾게 됩니다. 나머지 것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화를 낼 때, 맥박이 빨라지는데, 호흡만 하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습관화해야 합니다.”

스님은 2007년 9월부터 이곳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맡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100년 된 낡은 토굴과 군법당에서 생활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선방에서 정진하던 중 눈의 망막에 출혈이 생겼다.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왜 이런 어려움이 나에게 나타났을까.’ 깊이 묻고 물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길을 나서 다다른 곳이 강원도 인제 산골 토굴이다. 2년 반의 시간을 오로지 홀로 있었다. 밤에는 전기 없이 지냈다. 밝음보다 어둠을 택했다. 눈으로 보는 것을 스스로 없앴다. 실명을 대비한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볼 필요는 없었다. 그때 몸으로 들어온 것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는 법.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미세한 감정을 다 본 것이다. 울고, 웃는다. 사색한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지냈다. 산에는 나물이 지천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대기 하나로 땅을 두드리며 경전을 암송했다. 인근 군법당에서 법회 요청이 왔다. 군인들이 자살하고 탈영하니 상담과 법회를 해달라는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토굴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이런 물음이 스스로 일어났다.

‘네가 사람들을 정성으로 사랑해보았는가?’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대가도 없이 세상을 위해 해본 것이 뭐가 있냐?’

갑작스러운 스스로의 질문에 스님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 길로 병사들의 법회를 맡았다. 2004년이었다. 그해부터 12년 동안 군법당에서 법회를 맡았다. 2007년 9월,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처음 시작했다. 첫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이는 단 1명. 그것도 천주교인이다. 첫 입재식이 스님을 포함해 주지스님, 총무스님, 스텝 2명, 총 5명. 1명의 템플스테이를 위해 5명이 준비한 것이다. ‘한 명이 천 명이고, 만 명이다. 한 명을 절대로 소홀히 대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했다. 5명, 10명 이렇게 참가자가 늘어났다. 백담사 템플스테이가 대중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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