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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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 관리자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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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멀리 보이는 운문산 봉우리에는 아직도 잔설이 서려 있는데 스쳐 지나는 바람결에는 언뜻 봄기운이 묻어 온다. 앞 뜨락에 솜털옷을 입고 나온 애기 목련, 매끄럽던 가지에 송알송알 꽃순을 틔우는 매화, 돌틈을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이름모를 풀잎들을 바라보노라면 겨울의 시련을 온 몸으로 삭혀온 애잔함 때문인지 가슴에 작은 설레임이 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살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에 그만의 빛깔과 향기로 주어진 제 몫을 다한다. 말 못하는 무정물에게도 분명 존재해야 할 충분한 가치는 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때로 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스스럼없이 빼앗는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은 우리의 삶을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겨우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고 봄을 맞는 그들의 질긴 생명력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휘청거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앙상한 잿빛으로 남아 산중에 사는 이들과 격없이 어울렸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채경당 뒤뜰 매원(梅園)에서는 가는 떨림으로 작은 세계가 열리고 있다. 드디어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린 것이다. 요즈음은 저녁 예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매원에 들러서 그 향기에 흠뻑 취해 본다. 옛 어른들의 싯구를 가만히 되뇌어 보면 고인들의 심경이 절절이 가슴에 전해져 온다.

티끌 세상을 벗어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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