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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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Ⅱ
  • 관리자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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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의 선수행

1977년 2월 28일(月)

오늘 오후 개강하기 전 인사도 드릴 겸 그동안 수행을 게을리 한데 대해 꾸지람을 듣기 위해서 노사댁으로 갔다. 입실해서 뜨뜻미지근하게 경계를 제시하자 노사께서는 답답해하시면서 경계를 철저히 다그치신 후 "그만하면 됐다."고 하시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멈춤'이라는 다음 화두를 주셨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멈춤

앞의 '무(無)'자(字)를 들 때와 같이 아랫배에 자연스럽게 힘을 주며 반복해서 마음 속으로 크게 '날아가는! 비행기! 멈춤!'이라고 외쳐 보라. 날고 있다든지 정지해 있다고 하는 언구(言句)에 걸리면 정말 어려워진다.

물리학(物理學)과 선(禪)과는 별개의 영역이지만 재미나게도 물리학에서의 상대좌표 개념과 이 화두는 유사성을 띠고 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뉴턴의 제 2 운동 법칙은 다음과 같다. '외력(外力)이 작용하지 않는 한 본래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해서 그 운동을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이 법칙은 한 기준틀에서 기술한 것으로 다시 잘 따져보면 정지해 있다든가 움직이고 있다든가 하는 개념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개념이다. 즉, 물리학에서는 절대적인 기준틀이 없기 때문에 한 기준틀에서 속도 v로 움직이는 물체를 관찰하면 움직이고 있으나, 물체와 같은 속도 v로 움직이는 기준틀에서 보면 이 물체의 상대속도 v′은 v′=v- y= 0이 되어 분명히 정지해 있다. 따라서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정지해 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기준틀을 어떻게 잡느냐하는 차이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어디까지나 개념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 진득하게 앉아 진땀을 흘려보아야만 움직인다든지 정지해 있다든지 하는 차별적인 경계를 떨쳐버릴 수 있는 선적(禪的) 경계가 서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될 때 용수(龍樹)가 제기한 후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나는 화살은 날고 있지 않다.'라는 철학적 명제를 단박에 꿰뚫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단기 사천삼백십년(1977년) 마지막날에

오전 내내 그동안 밀렸던 연하장 및 편지 빚을 갚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 간신히 다 썼다. 오후에 종달 노사께 가서 지난 10개월 간 씨름해왔던 '날아가는 비행기를 멈춤'이란 화두의 경계를 혼신의 힘을 다해 제시했다. 노사께서 더 철저히 다그치시더니 다음 화두인 '외짝손소리(隻手聲)'란 화두를 종이에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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