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서설(早春瑞雪)의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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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서설(早春瑞雪)의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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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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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시심

제방(諸方) 산사 선방에서는 이미 반살림을 치르고 앞으로 반 삭이면 동안거 해제를 맞는다. 동지가 지난 지도 두 달. 여느 초목들도 새봄에 그 농염(濃艶)한 자태를 과시하기 위하여 은연중 단장에 바쁠 것이다.

광막한 천지는 아직도 잠 속에 고요한데 홀로 그 모습을 드러낸 매화는 춘풍태탕(春風 蕩)에 끼어들 백화에 비하여 그 기개가 얼마나 고고(孤高)한가. 조춘서설(早春瑞雪)이 소담하게 내려, 차가운 달과 더불어 짝한다면 그 가향(佳香)이 더욱 그윽하리라?

봄은 이렇게 기다릴 사이도 없이 이미 와 있다. 매화가지는 뜰 앞에 피어 오는 봄을 더욱 재촉, 한 소식을 일찍이 전하고 있다. 오묘한 자연의 이 화신은 어김없는 우주의 질서를 알려 게으른 자의 방일함을 경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돈의 와중에서 시를 잃은 시인에게 아련한 시상을 일깨워 주고, 고향을 잃은 중생에게 그 옛날 태고의 신비를 일깨워주는 그대, 낙목한천(落木寒天)에도 고독을 만족하는 그대만이 진정 자족(自足)할 줄 아는 자로다.

그는 아쉬운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다. 가진 것이 없어도 부족함을 모른다. 스스로가 지고(至高) 지미(至美)하니 부러울 것이 없고, 구하는 것이 없으니 또한 청초(淸楚)할 따름이다.

어떠한 위하(威 )에도 굴하지 않고 어떠한 일락(逸樂)에도 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초탈(超脫)해 있으니 또한 그러하다. 그는 명리도 빈부도 초월했다. 명리를 벗었는데 어찌 걸림이 남으며 지족을 모르랴.

기계의 회전속도가 날로 가속화되어 가는 사회구조. 우리의 생활도 이런 메카니즘 속에 영영급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번잡의 저편에는 천고(千古)의 맑은 샘이 흐르는 정적(靜寂)의 골짜기가 있다. 정진의 도량이 있어 마땅한 곳이다. 백의관음(白衣觀音)이 무설설(無設設)하고 남순동자(南巡童子)가 무문문(無聞聞)하는 그런 도량이기도 하다?

산사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 수행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선방이다.

고독이란 의지(依支)하고 살아 온 습관의 폐단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그 이상으로,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무엇인가 기대어 살아 왔다. 그 악습이 우리를 정신적 고아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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