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바닥에 알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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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바닥에 알몸으로
  • 관리자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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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내 아주 어린 시절이다.

마을 아이들하고 모여서 놀다가 문득 파아란 하늘을 보았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하늘이라 우리들은 하늘을 만져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 대여섯 명이 하늘을 만져 보려고 산으로 올라갔다. 내 고향은 덕유산이 동남으로 뻗어 내린 거창군 산골 마을이다. 마을을 싸고 있는 산들도 보통 해발 1200∼1300m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 큰 산이다. 이런 높은 산을 아이들이 올라갔었던 것이다. 점심도 굶고 하루종일 산을 올라갔다. 중간에 집으로 가겠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지만 혼자서 내려가지는 못했다. 아마 혼자 산을 내려가기에는 겁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하늘을 만지기 위해서….

산꼭대기에 올라갔으나 그곳에서도 하늘을 만질 수는 없었다. 우리들 어린 생각으로는 거울판 같은 하늘이 산꼭대기에 걸려 얹혀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한데 정작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그곳에서 보는 하늘은 여전히 집 앞 뜰에서 보는 하늘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 느낌은 그랬다. 집안에서 항상 위로 형들에게나 어른들께 하늘을 물어 보면 흡사 둥근 거울판 같은 것으로 가르쳐 주곤 했는데…그래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만져 보려고 했는데…그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날 온 동네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은 물론이다. 일시에 어린아이들 대여섯 명이 사라졌으니 난리가 안 났겠는가. 산꼭대기에서 하늘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너무도 허망하고 그곳에서 더 이상 올라가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 없다고 하는 것에 실망했다. 그 대신 우리는 산꼭대기에 장엄하게 붉은 빛을 발하며 서쪽 산을 넘어가는 태양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산 아래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든 지금도 오르기 힘든 천 삼백 고지의 산에서 난생 처음 보는 세계는 더없이 넓고 컸다. 끝없이 펼쳐진 산과 산지의 산에서 난생 처음 보는 세계는 더없이 넓고 컸다. 끝없이 펼쳐진 산과 산들. 집안에서 보는 사방이 온통 산으로만 둘러쳐진 산들, 그것만이 산의 전부요 세계인 것으로 안 나는 비로소 산 너머에도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밤이 깊어서야 죽을 고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동네가 우리들로 인하여 난리가 났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때 비로소 하나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세계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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