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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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인가?-
  • 관리자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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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념 연속 대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의심덩어리

무심스님 한국불교는 참선 중심의 불교 옛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저력과 전통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국불교가 요즈음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해외포교에 전력해 오신 숭산 큰스님을 모시고 대담을 갖게 됨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우선 현재까지 큰스님께서 해오신 활동과 그 외에도 해외에 퍼져있는 한국 불교의 포교현황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숭산스님 내가 해외포교를 한 지 한 30년이 되는데 처음의 8년은 일본에서 했고 그 뒤 22년 동안은 미국에서 지냈지요. 그밖에도 소련을 비롯해서 아프리카, 호주까지 제가 포교한 나라가 전 세계 22개국이고 한국 절은 120여 개가 됩니다.

한국 불교가 해외 포교를 시작한 것은 일본 불교나 다른 나라에 비해 볼 때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제 앞에는 서경보 스님이 하시다 들어오셨는데, 이 스님께서 처음 일본에 들어간 것이 6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처음 들어간 것은 72년도였습니다.

하지만 조계종 종헌에 따라 정식으로 홍법원을 세워 들어간 것은 제 때부터였습니다. 종헌에 보면 해외포교당을 세울 때에는 그 나라 홍법원으로 지정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포교당을 세우면 재미 홍법원이 되는 거고, 일본에 세우게 되면 재일 홍법원이 되는 거죠. 홍콩의 초대 홍법원장이 박청하 스님이셨는데 그 경우에는 재향 홍법원이 되는 거죠.

재미 홍법원이 생긴 것이 72년이었는데 그 뒤 서구라파, 동구라파, 소련, 호주, 아프리카 쪽으로 쭉 뻗어나간 것입니다.

무심스님 예, 방금 큰스님 말씀처럼 처음 해외포교에 첫발을 내디디신 것이 66년 일본 홍법원을 개설하시면서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후 홍콩, 미국, 캐나다, 폴란드 등으로 급격히 확신시키셨는데 처음 해외포교를 하시겠다고 발원하신 배경이나 계기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소개해 주십시오.

숭산스님 해외포교를 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는, 불교란 실천을 통해 중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데 우리가 서양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은 불교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교도 우리가 찾아가기 훨씬 전부터 그네들은 책을 보고 연구해서 이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깨닫는 길, 이것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일본 불교가 먼저 들어가 있었지만 선적인 흉내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들어가면서 먼저 선의 교과서를 하나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선의 나침반』이란 책인데 선을 중심적인 요체로 삼아 불교의 전반을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이 책 한 권만 보면 불교가 무엇이고 그 중에 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알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이란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요 깨달음의 길이란 것을 읽어 본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에 있어서의 한국 불교의 위치는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고 갑자기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이 선이요 한국불교라는 생각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심스님 이것은 조금 다른 문제인데요. 여러 사람들이 스님을 대하면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출가담이나 초발심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수행담이라고 합니다. 후학이나 신도들에게 구체적인 수행지도를 하신다는 입장에서 큰스님의 출가담이나 수행담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숭산스님 나는 왜정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대동아전쟁이다 뭐다 해서 국내외가 아주 소란스러웠어요. 그때는 일본놈들이 어떻게 악독하게 구는지 몰랐어요. 당시 내가 공업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한 반에 일본인과 조선 사람들이 반반씩 되었지요. 그런데 일본학생들 중에서만 반장을 시키고 차별이 심했어요. 그래 내가 일본학생을 불러다가 두들겨 패기도 해서 선생한테 기합을 받기도 했지요. 그리고 한 때는 독립투사에게 보국대며 학교 애기며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다가 경찰에 붙들려 가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해방이 되었는데 해방하고 나서는 공산주의하고 싸움하다가 이남으로 도망을 왔지요. 이남으로 와서 정치쪽에도 좀 기웃거려 봤는데 바로 정치는 때려치우고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불교에 관심이 생겨 불교학과로 전과했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불교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좀 지나 보니까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매일 싸움만 하지 공부를 안해요. 그때 서양사상에 심취해 있었을 때인데 혼자라도 공부를 하려고 처음엔 김구 선생이 피신해 있었다는 마곡사로 친구이자 스님이었던 분의 소개로 내려가서 지냈어요. 그때 무렵 신소천 스님의『금강경』을 읽을 기회가 있었어요. 이 금강경에서 “범소유상….”이라는 대목에서 눈이 맑아지면서 아, 세상이 다 허망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고 수덕사에서 박고봉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어요.

무심스님 앞으로 2년 후면 큰스님께서 해외포교를 해오신 지 꼭 30년이 됩니다. 30년 전 처음 외국에 나가셨을 때와 지금 해외에 나가셨을 때, 저 같은 외국인들이 스님들이나 불교 자체에 대해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을 가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느끼시는 바는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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