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보다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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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보다 무서운 것
  • 관리자
  • 승인 2007.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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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동불(東佛)서불(西佛)

     공사(公私)를 구분 못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던가, 흔히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경우를 겪게 된다. 이치로 따지면 내가 옳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할 때가 있고 또 법보다는 물리적 힘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마 이 말의 뜻은 논리적 이성(理性)보다 감성적 행동이 앞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은유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더구나 정상화되는 일이 흔하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감성적 공감대(共感帶)가 두터운 나라일수록 이와 같은 경우가 많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쓴 웃음을 지은 일이 있다. 어떤 가수가 나와서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 사연인즉 부친상을 당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것이며, 사회자는 연민과 감격이 뒤섞인 묘한 음성으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개인의 일이다. 좀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녀 개인의 일을 전국의 시청자에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불쾌감을 전달받으려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公)과 사(私)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이야 어쨌든 사회자나 가수는 감정을 억제해야 옳았다. 공사(公私)를 구분 못하는 흐리멍덩한 사고 경향들이 끝내 우리 국민성을 그릇된 방향으로 오도(誤導)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버스 안에서 겪은 일이다. 콩나물시루가 무색한 만원버스 속에서 더 태우는 운전수를 향해 불평을 터뜨렸다. 그때 안에서 「자가용 타고 다니지 뭣 때문에 버스를 탔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었다. 곧 버스 속은 평정을 되찾았음을 물론이다. 그런데 나는 왜 시민들이 그 말에 수긍했는지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그렇게 시달리지 않아도 될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또 식당에서 흔히 보는 일이지만 무엇을 시키는데 매우 미안해하는 것을 본다. 각자가 먹고 싶은 것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일하지!」하면서 여럿이 한 음식을 시켜 버린다. 이것도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시키는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다. 결코 식당 주인의 편의나 주방장을 위해서 음식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손님으로서의 특권을 스스로 무너뜨린 결과밖에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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