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간주의적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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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인간주의적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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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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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기획--불교와 상담

  2. 상담자의 조건

  심리적 접촉

  상담치료를 하는 데 있어서는 치료하는 사람과 치료받는 사람과의 사이에 성립되어야 할 조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최우선의 조건이 '심리적 접촉'으로 이것이 성립되지 않을 때 여타의 조건은 소용이 없어진다.

  심리적 접촉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지식적이 아닌 감정적 정서적으로 접촉하라는 뜻이다. 상담자가 '나는 인격도 있고 지식도 많으니까 어떤 문제라도 가져오기만 하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식의 권위적인 자세를 내비칠 때 상담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식과 권위를 가지고 접촉하려 하는 것은 심리적 접촉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차를 정비공장에 보내 수리를 요청하게 된다. 그때 수리공과 나와의 접촉은 기술적인 접촉이다. 기술을 필요로 해서 만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몸이 아파 의사를 찾았을 때 의사와 나의 만남은 지식적 접촉이다. 의사는 의학적인 전공지식을 갖고 있고 나는 전공지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을 찾아간 것이지 그 사람을 찾아간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은 심리적 접촉이라 하지 않는다. 심리적 접촉은 정적인 인간관계 즉 감성적인 관계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감성 하면 이성을 생각하게 되고, '남자는 이성적인 동물이고 여자는 감성적인 동물이다. 고로 여자와는 더불어 고상하고 큰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이성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고 감성적인 것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학문을 모르는 사람이다. 감성의 뒷받침 없는 이성 있을 수 없고, 이성의 보장 없는, 감성 하나도 없다. 둘은 상호 관련하는 것이지 따로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물분자는 H원소 두 개와 O원소 하나가 결합할 때 형성되지, H와 O가 따로 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여기서 정적(情的)인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의 의식은 감성을 생각하게 되고 감성하면 감각을 떠올려, 감각은 말초적이라 하여 무시하기 쉽지만 감각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감각이 진짜 인간을 만든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감각이 어떻게 진짜 인간을 만드는가? 불교에서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있다. 소리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우리는 눈으로 본다고 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눈으로 느끼고 귀로 느껴야 한다. 눈으로 볼 때는 상자를  보는 것이고 문구를 보는 것이며 물체를 보는 것이므로 눈으로 느껴야만 한다.

  여기 두 사람이 서로를 눈 한 번 깜짝 안 하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고 하자. 그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느 하나가 눈을 감는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저쪽 사람의 눈빛이 내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와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왜? 저 사람이 내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내 눈동자에 숨겨져 있는 나의 비밀까지 다 볼 것같은 두려움이 일기 때문이다. 저 사람의 눈동자가 내 마음 깊숙이 도달되고 나의 눈동자가 저 사람 마음 속에 도달되는 것, 이것은 말로는 이해할 수 없다. 느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情)'이란 바로 그러한 것을 이른다.

  다시 말해 심리적 접촉이란 정적인 인간관계이다. 이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성보다 모자라는 감성이 아니다. 특별한 뜻이 담겨 있으며 초월의 의미를 갖는다. 정적인 접촉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지만 이끌리는 그것이 바로 정적인 인간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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