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너머] 동지, 사소한 것들의 부활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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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너머] 동지, 사소한 것들의 부활을 꿈꾸며
  • 최원형
  • 승인 2016.12.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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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

동지, 사소한 것들의 부활을 꿈꾸며

동짓날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팥죽을 쑤고 있다. 알밤, 송곳, 개똥, 맷돌, 자라, 멍석 그리고 지게가 와서는 팥죽을 달라고 한다. 팥죽을 한 그릇씩 얻어먹은 이들은 그제야 할머니더러 왜 우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곧 호랑이가 잡아먹으러 올 거라 얘기하며 계속 운다. 팥죽을 얻어먹은 이들은 호랑이를 물리쳐주겠다고 한다. 이윽고 호랑이가 내려온다. “아이구 추워, 아이구 추워.” 그러자 할머니는 “추우면 아궁이에 가서 불 좀 쬐렴.” 부엌으로 불을 쬐러간 호랑이는 아궁이에서 튀어나온 알밤에게 호되게 당하는 걸 시작으로 연달아 수난을 당한다. 할머니에게 팥죽 한 그릇 얻어먹은 이들이 합심해서 호랑이를 멍석 말고, 이 호랑이를 지게가 짊어지고 멀리 강물 속으로 던져버린다.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또 흘렀을까? 탐관오리를 풍자한 호랑이의 처참한 말로가 민중들의 입을 통해 구전될 때 그들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할머니를 도왔던 이들은 모두가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이다. 그런 보잘 것 없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들이 지혜를 모아 호랑이라는 커다란 악을 해치운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혹시 붉은 팥죽에서 온 건 아닐까? 이들이 먹은 거라고는 오직 팥죽 한 그릇이니! 동지섣달 긴긴 밤에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보태며 팥죽을 쑤어먹는 재미가 살아 있던 그런 시절을 상상해본다.

12월은 달력에 마지막 남겨진 한 장이란 생각에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이 주는 ‘단절’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어느 선주민들은 12월을 시작과 끝이 만나는 달이라 했다.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12월 또한 수많은 날들 가운데 어느 날일 뿐이다. 오히려 내게 12월은 대단히 희망찬 달이다. 12월 끄트머리에 자리한 ‘동지’라는 스물두 번 째 절기의 힘 때문이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는 말은 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시인 신경림은 ‘새벽이 어둠속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동지를 기점으로 가장 긴 밤을 뒤로하고 서서히 태양의 고도가 올라간다. 어느 종교에서 죽은 지 사흘 뒤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지 사흘 뒤부터 태양의 고도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전깃불은커녕 호롱불조차 귀하던 시절, 해 떨어지면 사위가 칠흑 같던 그런 시절에 밤이 길어진다는 것은 다양한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북유럽에 요정과 신화가 풍부했던 것과 매섭고 긴 겨울밤이 결코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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