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지탱하는 석축처럼, 나는 자비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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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지탱하는 석축처럼, 나는 자비로운가?
  • 불광출판사
  • 승인 2016.05.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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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비슬산 대견사

오월은 색이 짙어지는 달이다. 들의 보리밭은 더 푸르고, 수양버들의 연두색 잎들도 초록으로 바뀌고 있다. 보리밭은 물결처럼 바람결에 소리를 내고 드러눕는다. 배곯지 않으면 밥보다 술이 좋아 보리는 옛날 춘궁春窮의 보리가 아니고, 양조용으로 쓰이는 맥주보리가 많다. 들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다. 그 노랑에게도 눈길을 한번 주고 가야지, 그러면 내 눈도 노랗게 물들 것이다. 

산에 들어 이윽고 우리가 만나는 것은 참꽃, 진달래다. 진달래는 탈속脫俗한 듯, 저만치서 붉다. 진달래는 화전에 얹어 먹을 것이어서 참꽃이라 하고, 철쭉은 끈끈하고 먹지 못해 개꽃이라 한다. 저 참꽃의 연분홍은 처녀의 젖꼭지 같고, 더 짙어져 자줏빛 도는 철쭉은 기녀의 젖꼭지 같다는 것은 에로티시즘 계열 어느 시인의 말이고, 나는 햇살에 비쳐드는 진달래의 연분홍이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이전의 색, 사미승沙彌僧의 눈빛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과 보리밭의 청록Cyan, 개나리의 노랑Yellow, 진달래의 자홍Magenta은 자연의 삼원색三原色이다. 저렇게 뚜렷하게 구별되는 색들의 세상, 꽃도 하나의 욕망이겠거니 하면, 그것은 색계色界일까? 세 가지 색을 합치면 빛이 사라진 밤처럼, 블랙이 된다. 빛이 있어 색깔이 보이는 시간이 색의 세계이고, 밤이 깊어 굳이 색을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무색계無色界일까? 낮이 색이고 밤이 공이라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둘이 만나는 시간일 것이다. 낮과 밤이 만나는 저녁처럼, 색이 다하여 무색이 되고 공과 합일하는 시간. 공즉시색空卽是色도 그렇다. 무색이 다하여 다시 색이 생겨나고 공이 색과 합일하는 시간, 밤과 낮이 만나는 새벽처럼. 부처님이 바로 그 시간에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새벽하늘에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홀연 깨달으신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저런 엉뚱한 생각들로 반야심경 ‘팔자八字’풀이를 하면서 구불구불 산을 오른다. 

대견사大見寺는 대구 비슬산琵瑟山 정상 바로 밑, 얼굴의 눈썹쯤에 오목하게 앉아 있다. 지리산 법계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1,000m가 넘는 고지에 자리한 몇 안 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이다. 비슬은 고대 인도의 힌두신 비슈누Vis.n.u의 범어발음을 따온 것이라거나, 신선이 비파(琵)와 거문고(瑟)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왔다는 설이 분분하나, 이름 그대로 아름답다. 비슬산은 절 남쪽으로 커다란 돌덩이들이 경사면에 쌓인 세계최대 규모의 암괴류(岩塊流, 천연기념물 435호)로 유명하다. 이 암괴류는 지구별에 사람이 살기 몇 만 년 전에 형성된 돌의 강이다. 돌 강은 절 밑에서부터 흘러 비탈을 따라 750m를 내려가다 맞은편에서 오는 또 다른 돌 강과 합류한다. 강폭이 80m로 넓어지면서, 멀리 2km를 흐른다. 두 개의 지류가 두물머리에서 만나 하나의 강이 되듯이, 돌의 강은 정말 물의 강처럼, 흐르는 것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견사 법희 스님은 “초록의 숲 사이로 검은 돌이 흐르고,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위로는 바람이 흐른다.”면서 “그 흐르는 돌의 갈래가 멀리서 보면 비파의 현을 닮아 있다.”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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