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이’라서, 행복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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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이’라서, 행복한 남자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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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염습사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평소 법정 스님은 말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스님은 몸소 그것을 행했다. 이생의 몸을 벗고 영원한 적멸에 든 스님의 얼굴은 잠든 것처럼 평온했다. 스님의 법구를 염하고 일련의 장례의식을 스님의 유훈에 따라 여법하게 주도했던 염습사 유재철(56세, 동방대학원대학교 전임교수) 씨의 증언이다. 그는 불교장례업체 ‘연화회’를 20년째 운영하며 대학 강단과 사찰에서 임종의례를 가르친다. 대중들에게는 최규화,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을 염한 ‘대통령 염장이’로 더 잘 알려진 그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이별’이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 나를 살린 불교에 은혜 갚는 길
: 염습사는 망자가 마지막 남긴 육신을 수습하는 직업입니다. 불자로서 장의업에 뛰어들어 손수 염을 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염장이가 되려고 그랬는지, 벌려 논 사업마다 엎어졌어요. 20년 전,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던 사업을 정리한 뒤에는 석 달 열흘을 멍하니 반송장이 되어 숨만 쉬고 누워 있었죠. 그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개운사를 갔는데 햇볕은 따듯하고 염불소리는 그렇게 뭉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남을 탓할 일도 원망할 일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그해 가을부터 개운사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송광사 수련대회서 법정 스님께 법명도 받았지요. 바를 정正, 행할 행行. 그 무렵 전남 광주에 상조회를 운영해 청년불교운동을 하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신선했죠. 그 친구들한테 상조회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장의업을 천시하는 당시 사회분위기 속에서 나중에 딸자식 어떻게 시집보내려고 그러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나를 다시 살려낸 불교에 은혜 갚는 길이니까요.

: 죽음을 터부시 하는 분위기 이외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듯합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참 희한해요. 염하러 가면 왠지 낯설지가 않으니. 전부 내 식구 같고, 나 같고 하니 말입니다. 일을 배우려고 장례식에 따라간 첫날부터 몸 닦는 걸 시키는데 그냥 묵묵히 했습니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 싶었을 그 친구들이 오히려 놀란 눈치였지요. 어렸을 때부터 ‘집 장례’를 치르며 집안 어른들이 염하시는 걸 지켜본 경험이 한 몫 했어요. 한번은 영정사진을 보면서 속으로, 이왕이면 좋은 데 가시길 기도했는데 그날 밤부터 잠자리에서 누군가가 저를 내려다보는 겁니다. 사진 속의 그 분이었어요. 며칠 잠을 설치고는 암도 스님을 뵙고 무슨 영문인지 여쭈었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이놈아, 업대로 가는 것인데 니가 집착을 하니까 안 떠나는 거지! 너는 염만 잘하면 돼. 그 집안 걱정도 하지 말고.” 그 일로 인생 공부를 했지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요. 참선도 해보고 염불도 해봤지만 저는 염할 때 가장 일념이 잘됩니다. 잡념이 다 떨어져 나가요. 주위에 이야기하면 천직이라고들 하지요.

: 광덕 스님, 석주 스님, 숭산 스님, 법정 스님, 정무 스님, 묘엄 스님, 지관 스님, 대행 스님 등 큰스님 장례의식을 여러 차례 주관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젊은 시절 법명을 주신 법정 스님 다비식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결혼 20주년 여행을 송광사로 갔어요. 헌데 총무스님께서 걱정이 있다고 하십디다. 법정 스님께서 편찮으신데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장례 초안을 짜보라 하시더군요.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그쪽에선 이미 6개월 전에 계획이 다 끝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회의를 거쳐 미리 안을 마련해 놓았는데 몇 달 뒤 스님께서 입적하시자 난감해졌습니다. 수의 뿐 아니라 관도 쓰지 말라 하시고 홀연히 떠나셨으니 스님 말씀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나 막막했죠. 고민 끝에 생전에 쓰시던 대나무 평상에 법구를 모셔서 손때 묻은 가사를 덮어 다비장까지 오르고 조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법정 스님다운 다비식이다, 참으로 정갈하고 여법하다고 말씀하셨죠. 다 마친 뒤에 일곱 분 상좌스님들이 제게 큰절을 하려 하시더군요. 얼른 손사래를 치고 돌아섰어요. 이럴 때면 염장이로 사는 고단함이 씻은 듯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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