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소환한 종교, 철학 그리고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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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소환한 종교, 철학 그리고 여성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1.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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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미디어아트 축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공식발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주제 덕분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귀신, 간첩, 할머니’다. 휘황찬란 네온사인 가득한 서울의 거리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주제들이지만 나름 충분한 이유를 품고 있다. 이 단어들은 각각 아시아의 지난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코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상한 분위기의 주제 선정은 역시나 올해 비엔날레를 총지휘하고 있는 박찬경 예술감독의 아이디어다. ‘만신’이라는 영화로 한 무속인의 인생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투영했던 박찬경 감독다운 접근법이다. 
박 감독은 장난스럽기 때문에 도리어 친숙한 이 주제들을 진지하게 다듬기 위해 올해 초 ‘프레비엔날레’를 열어 세계적인 석학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도 배우고 주목도가 높은 이슈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의 석학 왕후이는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지역 공동체로서의 아시아를 해체하고, 각 지역 사이의 복잡한 관계망으로 봐야 한다.”는 그의 의견은 이번 비엔날레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지금까지 7번의 행사를 개최하는 동안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는 새로운 기법이나 테크닉에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이번에도 작가들이 선보일 작품들에 기발한 아이디어나 테크닉이 결합돼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수를 완전히 틀어 사회적인 차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자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취지다. 또한 서구 중심의 비엔날레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신 아시아와 지역성을 중시하겠다는 게 주최 측의 의도다. 최근 미술계에서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 귀신, 간첩, 할머니로 풀어낸 20세기 아시아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즐기기 위해서는 세 가지 키워드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 주제어 중 가장 앞줄에 선 ‘귀신’은 뭇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만큼은 그저 무섭기만 한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굴곡진 아시아의 근현대사를 되짚는 핵심이 된다. 전통을 상징하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아시아는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무속의 발원지다. 현재도 이 종교들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참여 작가들은 각각의 종교와 그 정신문화를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이 주제어를 두고 현대 과학이 쫓아낸 귀신들을 미디어가 다시 소환하는 형식이라고 풀이하는 해석은 재밌게 곱씹어볼 만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간첩’이다. 아시아는 제국주의의 식민 피해와 냉전의 경험이 심각했던 지역이다. 현재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폭력과 전쟁, 극심한 불신은 식민지배와 냉전이 남긴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첩’이라는 키워드는 이런 아시아의 과거사에서 출발해 금기, 망명, 은행 전산망 해킹, 영화의 흥행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주제로 삼는다. 코드 해석, 정보, 통신을 주무기로 삼는 미디어 작가들의 작업방식은 얼핏 간첩의 활동과도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간첩활동의 가치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재기발랄함을 선보인다.
세 번째 키워드 ‘할머니’는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모두 견뎌내고 현재와의 접점을 만든 증인들이다. 아직도 덧난 상처를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려보자.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던가. 지난 세기의 여성은 현재 할머니로 대변된다. 한편으로 할머니라는 존재는 노년층을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노년층은 공경해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젊음에 대한 맹목적 찬양에 떠밀려 그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간다. 과연 이것은 온당한 처사인가. 예부터 노년층은 침묵의 기술자이자, 고급 정보의 소유자로 여겨왔다. 그런 역설적 존재, 노년층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여진다.

| 과학, 인문학, 테크놀로지가 뒤섞인 현대예술의 정수
각각의 키워드를 녹여낸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한국영상자료원(KOFA)에서 동시 진행되는 영상물 상영이다. 영상물 역시 미디어아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영상물은 총 42편으로 짧게는 7분, 길게는 150분이 넘는 장편까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각각의 영상물은 영매(Medium), 아시아 고딕, 냉전극장, 그녀의 시간, 다큐멘터리 실험실로 세분화된 주제에 맞춰 시기별로 나눠 상영된다. 관람은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비엔날레 측은 20세기 아시아를 휩쓴 식민과 냉전의 경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급변을 전시 주제로 삼은 이유에 대해 “지난 한 세기 동안 아시아 지역이 걸어왔던 흔적들을 한 광주리에 담아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아시아라는 지역에 있어 지난 세기는 때론 처절하고 때론 영광스러웠던 시간이었다. 그 어떤 세기보다도 아픈 상처를 가지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작가들은 그런 아시아의 지난 시간들을 주제로 받아들고 과학, 인문학, 테크놀로지를 뒤섞어 각자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비엔날레에서 만나게 될 작품들은 적어도 둘 이상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개막식은 9월 1일이다. 개막행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이상순 만신의 서울새남굿으로 문을 연다. 새남굿은 서울·경기지역의 큰 굿 중 하나로 불교의 저승관과 유교의 의례적 요소가 잘 녹아 있는 전통 굿판이다. 주최 측은 새남굿 역시 미디어아트의 한 줄기로 보고 축원행사로서의 의미를 담아 개막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이외에도 참여 작가인 자크라왈 닐탐롱, 에릭 보들레르가 함께 하는 작가와의 대화시간도 마련된다. 전시의 일반 공개는 9월 2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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