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예전, 제가 잠시 공양주를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스님들 직책 중에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공양주인 것 같아요. 밥이 조금 질게 되면 질게 됐다고, 조금 되면 되다고 신경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때 계시던 큰스님께서는 늘 공양을 마치시곤 “오늘 공양 참 잘했네.” 하셨습니다. 밥이 질면 “오늘 밥이 참 부드럽고 좋았네.” 밥이 되면 “오늘은 참 고슬고슬해서 좋았네.”라 하셨죠. ‘저런 모습이야말로 큰스님으로서 마음 쓰는 모습이구나’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떻게 저런 마음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 업으로부터의 자유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하안거 결제 중에는 장삼을 입고 선방에 앉아 참선을 합니다. 한여름에 가사까지 수하고 앉아 있으면 보통 더운 것이 아니에요. 스님들 옷이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오후에는 그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옷을 빨면서 하시는 얘기가 참 더웠다고는 말씀하셔도, 삼복더위에 참선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으세요.
얼굴은 대단히 평화로운 표정이었고요. 그래서 제가 한 선배스님을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스님은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두 시간씩 앉아 있는 것이 상당히 힘듭니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땀이 나서 옷이 질척거리는 것이 힘듭니다.” 그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여름에 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명이 아닌가.” 땀이 날 때 그것이 힘들다거나 불쾌하다는 것이 아닌, 땀이 날 땐 땀이 나는 대로, 더울 땐 더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무척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절의 제 방이 냉골이 되었어요. ‘이거 왜 이러지?’ 생각하며 물었더니 제 방 보일러를 고치고 있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춥고 불쾌할 수 있는 일인데, 그때 얼른 생각했습니다. ‘아, 좋은 기회다. 이제 한번 앉아서 정진해 보자.’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서 밤새 정진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종무소 거사님께서 사과를 하러 오셨어요. 그때 제가 화가 났으면 이랬겠죠. “뭐! 죽었나 살았나 보러 왔나!” 그런데 저는 그때 내 마음속에 생겼던 정진에 대한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하룻밤 정진 잘 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좋게 생각하면 괜찮다’고 하지만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문제죠. 거기까지는 대개 알아요. ‘좋게 생각해라, 좋은 이야기해라.’ 하지만, 화가 났는데 좋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생각하려 해도 화가 났다면 그 마음이 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게 되죠.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