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를 존상이나 회화로 모실 때, 그 좌우의 제자로 마하가섭과 아난을 배치한다. 이는 중국불교의 선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수받아 전개한 법의 상속자로서 이분들을 꼽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방불교나 티벳불교에서는 좌우의 제자로 사리불과 목건련을 모신다. 이는 붓다 재세시의 역할을 더 크게 본 것이다.
불교에는 진리의 상속과 전개라는 법통法統의 시간성과, 붓다와 함께한 공간성에 대한 인식차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조선으로 말하자면 세종이나 영·정조와 같은 흐름을 우선으로 볼 것이냐, 정도전이나 이방원과 같은 개국공신을 높게 볼 것이냐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에게 붓다의 제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두 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리불과 아난을 든다. 사리불이 교단의 총리로 비유될 수 있다면, 아난은 비서실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리불은 붓다와 함께 교단의 주축을 완성한 영웅 중의 영웅이다. 그래서 사리불을 ‘진리의 장수(法將)’라고 하는 것이다. 또 아난과 같은 경우는 붓다의 25년 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붓다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교단의 확장과 안정을 위해서 주력한다. 때문에 『잡아함경』 권23의 「아육왕경」에는, 아소카왕이 기원정사에서 제자들의 부도를 참배할 때 사리불·목건련·마하가섭의 부도에는 10만 냥으로 공양했으나, 아난에게만은 유독 100억 냥을 공양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올바른 가르침의 홍포를 높이 산 것이다.
실제로 이 기록에는 깨달아 아라한이 되고도, 다른 이를 위해서 단 한 차례도 설법하지 않은 박구라 존자의 부도에 대해서도 나온다. 여기에 아소카왕은 단지 1전만을 공양한다. 이를 보고 신하들이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분인데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왕은 “이 분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라고 대답한다. 이는 불교의 사회포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개인의 수행과 이익만을 위한 불교는 불교가 아닌 것이다.
대수투파 나란다의 사리불 수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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