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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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에 대하여
  • 관리자
  • 승인 200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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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나누는 기쁨 주는 기쁨

 대승불교의 여섯가지 수행덕목은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이다. 이 여섯가지 수행덕목(六波羅蜜)중에서 보시를 맨 첫 머리에 놓는 것은 이것이 베푼다는 것이어서 보살의 자비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원시종교, 예를 들면 샤만 같은 것에서는 '나'의 현세기복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서 인간이 이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그 기복의 핵심이었다. 홍수, 화재, 한발, 지진 등 대자연의 위력이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이어서 이로 부터의 탈출과 무사를 위해, 자기안존을 위해 인간은  신을 향하여 강복(降福)을 빌었다. 말하자면 원시종교는 자기안존을 위한 자기중심적 아욕적 기복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종교에 있어서는 타부족과의 싸움에 있어서 그 승리를 위해 역시 강복을 비는 의식이 많이 행해졌다.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멸망과 자기안존의 원망(願望)이다. 그런데 불교를 위시한 기독교 등 보편종교에 와서 이것이 근본적으로 전위(轉位)되었다. '나'를 죽이고 '남'을 위해 기복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그 외아들을 신명을 바쳐 지키듯이 모든 목숨있는 것들(一切衆生)에 대해서 무량(無量)의 자비를 일으킬지니라. 또 전 세계를 향해서 무량의 자비심을 일으킬지니 상하종횡에 장애 없고, 원한 없으며, 적의(敵意)없이 자비를 행할지니라. 앉았거나 누웠거나 잠들어 있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확실하게 견지할지니 이세상에서는 이런 상태를 '숭고한 경지'라 한다. [숫다니파아타]." 그리하여 이제 인간은 '나'를 위해 '남을'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내'가 죽을 수 있고 이타(利他)의 구경(究境)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다. 즉, 그것이 현세에 있어서의 한계적 행복이 아니라 허망한 현세를 뛰어 넘은 '영원한 행복'에 다다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거기에 무아(無我=空)를 설하신  무애(無碍)의 철학이 밑받침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이 현세기복을 위해 아(我)를 중심으로 하여 빌고 또 빌어 보았으나 그것이 결국은 허망한 것이었다는데 대하여 처음 눈뜨신 어른이 세존이시었다. 만유는 실로 얽히고 섥힌 연기(緣起)의 그물의 한콤마에 불과하므로 이 의타기성(依他起性)과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깨달아서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베풀어라 하는 것이 세존의 가르침인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베푸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수많은 자타카(本生譚)중에서 사신양호(捨身養虎)의 이야기가 있게 되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세 왕자가 있었다. 하루는 이 세 왕자가 산길을 가는데 굶어 다 죽게 된 호랑이를 보았다. 그 호랑이는 새끼를 여러마리 낳았는데 어미가 굶어 젖이 나오지 않으므로 새끼들도 다 죽게 된 것이었다. 이 모양을 보고 막내왕자는 생각했다. '세세(世世)에 나는 나를 위해서만 아욕적으로 살아왔다. 그리하여 그 숙업(宿業)으로 생(生)을 받고 또 생를 받아 죽음을 되풀이하는 윤회전생을 거듭해왔는데 이제 이 몸을 저 호랑이에게 주어 윤회전생하는 그 업의 사슬을 끊으리라.' 그리고 먼저 몸에서 피를 내어 그 피를 어미호랑이에게 먹임으로 기력을 회복하게 하고, 다음에는 몸전체를 주어 어미호랑이와 새끼들을 아사에서 건졌다. "그 때의 그 막내왕자가 지금의 나니라." 세존께서는 무아와 이 무아의 사상에 근거를 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보살의 자비를 이렇게 자타마 이야기를 통해 알아듣기 쉽게 설하셨다. 이것을 또 [금강경]에 이르러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씀으로 설하는 것이다. 무주상보시! 상(相)에 주하는 바 없이 베푸는 것, 즉 베푸는 자도 공이요, 베품을 받는 자도 공이며 베푸는 물건도 공이니 그 무엇에도 머무름이 없이 베풀어라 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살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생각이 없다. 또 거기에 대한 보상의 심리도 없다. 이 무보상(無報償)의 극치, 양무제(梁武帝)와의 문답에서 달마가 '불법의 수행(修行)에 따른 공덕이 무엇이냐'한데 대하여 '무공덕'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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