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반복되는 단순함의 극치
상태바
한 땀 한 땀 반복되는 단순함의 극치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2.01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장의 고집불통佛通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김해자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보면, 간혹 수면 시간만으로도 탄복할 때가 있다. 어느 특급요리사는 하루 2시간 자며 요리 연구에 매진하고, 어느 스님은 경전 번역의 원력을 세우고 하루 한두 시간만 자며 정진한다. 나폴레옹, 에디슨,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빌 게이츠의 공통점도 잠이 없다는 것이다. 체질상 4시간 이하로 자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일명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다. 이들은 대개 자기 일에 열정적이며, 역경에 부딪혀서도 긍정적인 자세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누비장 김해자(60세, 중요무형문화재 제 107호) 선생도 쇼트 슬리퍼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며 바느질에 몰두해온 세월이 40년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누비에 미쳐 짐승(소)처럼 일만 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의 정신을 온몸으로 밀어붙인, 여장부 김해자 선생을 만나기 위해 천년고도 경주로 향했다.

끊임없이 비우고 내려놓는 수행의 과정
김해자 선생은 뾰족한 바늘처럼 꼿꼿했다. 앉은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고, 말은 빠르고 가식 없이 직설적이다. 고요한 눈빛에선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강인함이 배어나온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실타래가 풀리듯 부드러운 미소 속에 따뜻함이 전해진다. 바느질은 일상생활이자 생계수단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삯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바늘을 들었다. 20대에는 바느질에서 벗어나고자 전국을 방랑하기도 했다. 당시 걸핏하면 가위에 눌렸는데 그때마다 비몽사몽간에 저절로 ‘관세음보살’ 염불이 돌아가곤 했다. 불교와의 인연이 전생의 숙연임을 깨닫게 되는 체험이었다. 이후 불교 공부를 위해 통도사 극락암에 갔다가 1년간 경봉 스님을 시봉하기도 하고, 수덕사 견성암에 머물며 정진하기도 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한복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각양각색의 요구와 취향에 맞춰 사는 삶에 지쳐갔다. 무엇보다 양장으로 빠르게 바뀌어가는 복식문화 속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 “누비를 처음 하게 된 건 순전히 영리 목적이었어요. 밍크코트가 유행하는 걸 보며 누비로 코트를 디자인해서 만들면 성공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누비를 막상 해보니까,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한 땀 한 땀 반복되는 단순함의 극치 속에서 분주하기만했던 나를 발견하고 온전히 쉬게 할 수 있었지요.”
그녀는 절을 할 때도 엎어지다시피 할 정도로 성미가 급했다. 그런데 누비옷 한 벌을 짓기 위해서는 하루 15시간씩 꼬박 집중하더라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인내와 정성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다. 누비 바느질은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쓸데없는 망상, 청하지도 않은 생각들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비우고 내려놓는 수행의 과정이었다.

누비 회장저고리. 분홍색 길에 깃과 곁마기는 하늘색, 끝동은 흰색을 댔다.
목판 당코깃에, 겨드랑이 부분은 작은 삼각무를 달았다.
길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문단으로 솜을 두고 누볐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