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맺어준, 친구 이상의 관계
“정우야, 현석아! 바람이나 쐬고 오자.”
“응. 그러지 뭐.”
아이를 앞세우고 만난 이웃이고,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인들과 떠나는 여행의 첫 발이다. ‘어디를? 왜? 뭐 하러’라는 물음보다는 ‘바람이나 쐬는’ 것에 의미를 둘 줄 아는 친한 사람들. 소심한 성격 탓에 관계 맺기가 어려운 내게, 넷이나 되는 적지 않은 아이들은 사람과의 소통에 커다란 문이 된다. 나보다 더 커버린 대학교 3학년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만난 친구가 정우이고,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셋째가 다섯 살에 시작한 태권도 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현석이다. 처음이 중요하다고, 우리가 정우맘 현석맘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아이들을 통한 첫 만남 때문이 아닐는지.
정작 아이들은 자라서 서로에 대한 아무런 끈을 가지지 않은 눈치건만, 그 이름을 빌린 우리들은 매일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고 산다. 공동의 관심사도 처음엔 아이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행사는 물론이고 지역공동체의 모임이나 학원, 시장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교환 등 이런저런 일들에 서로 얽히다 보니 이제는 가족을 대신할 만큼 다가와 있다. 가족, 친구, 친척 간에 차마 입에 담기 치사한, 하지만 쌓이면 폭탄이 되고 말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들은 이웃과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조금씩 김이 빠진다. 아이들 어린 시절은 한없이 되풀이 되고, 어제 오늘의 여러 가지 생활들을 은밀히 관찰하고 평가하는 뒷담화의 몫까지.
아이들이 크고 나서 정우맘은 바느질 배우느라 항상 손끝이 바쁘고, 현석맘은 새로 일을 시작해 어린이집 1년차 교사가 되었다. 멀지 않은 날 전통 바느질로 화려한 전시회를 열거나, 자신의 사랑을 원 없이 부을 수 있는 유치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을 위해 바쁜 시간만큼 휴식은 필요하고, 바람을 쐬는 일은 가장 신선한 휴식이 된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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