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절에서 삶의 기억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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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절에서 삶의 기억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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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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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함께 떠나는 사찰여행 / 경북 포항 오어사

지금이야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당시에 우리가 가고자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세상 사람들에겐 생경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을 중심으로 그 숫자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다. 울산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 반은 비정규직이었다.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월급도 달랐고 밥을 먹는 식당도 달랐고 복장도 달랐다. 명절 때 정규직은 갈비세트를 받아 거리를 당당히 활보했지만 비정규직은 참치나 비누세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당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선배와 나는 6년을 동고동락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건 동아리방, 혹은 시위가 있는 거리에서였다. 둘 모두 졸업 후 노동자가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건 둘에게 정언명령 같은 것이었다.

당시 선배의 결단은 명쾌하고 단호한 것이다. 그에 반해 나의 신중함은 지리하고 멸렬한 것이었다. 선배는 울산에서 해고된 노동자나 비슷한 처지에 있던 학생들을 만나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후 선배의 삶과 나의 삶은 서울과 울산만큼 먼 것이 되었다.

그렇게 14년이 지났다. 그동안 선배는 숙련된 용접공이 되어 있었다. 그 세월 동안에도 선배의 결정은 언제나 명쾌하고 단호했으리라 짐작된다. 형수가 될 사람이 암에 걸린 걸 알면서도 결혼식장을 걸어 들어가던 뒷모습이 그랬고, 공장과는 멀지만 형수의 건강을 위해 집도 얼마 없는 산속으로 이사를 했던 선배의 모습이 그랬으리라. 그동안 업무방해와 집시법을 이유로 몇 번의 수배생활과 두 번의 구속을 경험한 것 역시, 그 명쾌한 선택 속에 덤으로 주어진 또 하나의 삶이었다.

그동안 난 절집 주위에서 기자로 종무원으로 그리고 편집자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한때 그곳에 다시 내려갈 것을 꿈꾸며 전기기술도 배우고 중장비 기술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지만 가슴에 사무친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1996년 울산과 선배는 어쩌면 나에게 부채가 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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