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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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희망
  • 관리자
  • 승인 2010.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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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집에 다다르자 김영경 씨가 이미 문을 활짝 열어놓고 환한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맞아준다. 집안에 들어서는데 싱크대 옆의 수저통에 눈길이 간다. 숟가락이 열댓 개는 되어 보인다. 한 눈에 봐도 세 식구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개수다. 이유를 묻자, 몸이 불편하면 집안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둔 것이라며 부끄러운 듯 웃어 보였다.

그녀는 10년 전 정신병의 일종인 ‘분열정동장애(조증이나 우울증 등 양쪽 증상을 다 갖고 있는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다. 망상과 조울증을 일으키는 정동장애로 인해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껏 혼자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사실 결혼 전에도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탓에 생긴 허약 증세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점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떤 때는 어지러운 정신을 감당하지 못해 길바닥에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그런 망상과 조울증을 일으키는 장애를 안고서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작은딸 지현(13세)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처럼 이것저것 안 하고 방에만 누워 있어?” 그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철없는 딸아이에 대한 서운함보다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졌다. 두 딸은 아직까지 엄마의 상태를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조금 불편한 정도의 지병이 있는 줄로만 알고 있다. 혹여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철저하게 숨겨 왔기 때문이다.

“여건만 되면 무조건 저와 떨어져 있게 했어요. 학교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으로 복지관이나 학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다 그쪽으로 보냈어요. 아이들과 일부러 대화도 자주 안 해요. 혹시나 은연 중에 제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어,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들을 찾아가, 자기 몫까지 아이들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올해 큰딸 수현(17세)이는 국제고에 진학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수현이가 부쩍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력보다는 저소득층 특례로 입학했기 때문에, 날고 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를 따라가기가 벅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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