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신 분들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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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신 분들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세요"
  • 관리자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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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만나다 / 보리수선원 위빠사나 수행

2010년 1월 1일 새해 원단, 그리고 이어진 첫 연휴 3일 동안 나는 경기도 과천의 보리수선원에 있었다. 그리고 1월 4일 첫 월요일, 한국의 산하를 백설이 뒤 덥던 날 집에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창문을 열고 잠시 내다봤을 뿐이다. 마당과 골목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두세 차례 밖으로 나갔을 때도 집 앞 사철나무 위에 무겁게 얹혀있는 백설을 가볍게 한 번 쳐다보곤 그만이었다.

만일 1년 전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신정 연휴엔 무슨 계획을 짤까, 낙산사에 기도하러 갈까, 해남 미황사로 해맞이하러 갈까, 그냥 가까운 관악산 연주암에 갈까. 뿐만 아니라 소복소복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을 터이다. 이럴 때 눈꽃 열차를 타고 여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집에 박혀 있는 신세를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즈음, 외부로부터 어떤 만족이나 즐거움을 얻으려는 욕구가 전혀 없다. 집에 조용히 혼자 있어도 밖으로 나가 자연을 보는 즐거움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언가를 향해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면 내 안의 즐거움과 평온이 깨진다는 것을 안다. 나의 외형적 삶은 변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내면은 예전에 비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1년 전, 위빠사나 수행처인 보리수선원을 만난 다음부터이다.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찾아서

요즘엔 선원에 주말 수행이 있어서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이틀을 가야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쯤 간다. 수행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다른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선원과 집과의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시간 날 때마다 갈 수 있으니 그 점이 고마울 뿐이다.

선원에서 수행할 땐 말할 것 없고, 오가는 길에서도 즐겁고 선원에 가려는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아니, 선원에서 돌아왔을 때도, 가지 않을 때도 행복하다. 내가 말하는 행복은 외부의 어떤 조건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인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온이다. 이와 비슷한 행복감을 물론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만나기 전 나름대로 한국의 여러 사찰에 다니면서 기도와 수행에 전념했었다. 『금강경』을 읽고, 108다라니를 하루에 천 번씩 암송하기도 했으며 절 수행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은 했다. 전날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5천배의 절을 한 날이었다. 11월 산사의 밤은 엄동설한이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쉬지 않고 절을 하다가 새벽녘 밖으로 나왔을 때, 절 마당엔 눈이 하얗게 내렸고 투명한 하늘엔 조각달이 걸려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앞산은 나를 보호하고 있었고, 내가 절을 하는 동안 몰래 내린 눈은 나를 위해서였다. 그때의 뿌듯함과 희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심하는 법과 수행의 기본을 어느 정도 닦았다고 보신 나의 은사스님은 내게 간화선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화두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다. 선승들의 법문을 듣고 어록을 보았으나 뭔지 막연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니 화두에 몰입되지가 않았다.

은사스님은 뛰어난 선승이셨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적극적으로 따르지를 못했다. 수행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화선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고 본다.

그런 중에 친구의 권유로 위빠사나 수행을 만났다. 위빠사나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구나 나를 아끼고 보살펴주시는 은사스님께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수행법을 접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위빠사나 수행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뜻밖으로 보리수선원에 온 첫날부터 위빠사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요즘엔 선원에 주말 수행이 있어서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이틀을 가야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쯤 간다. 수행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다른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선원과 집과의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시간 날 때마다 갈 수 있으니 그 점이 고마울 뿐이다.

선원에서 수행할 땐 말할 것 없고, 오가는 길에서도 즐겁고 선원에 가려는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아니, 선원에서 돌아왔을 때도, 가지 않을 때도 행복하다. 내가 말하는 행복은 외부의 어떤 조건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인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온이다. 이와 비슷한 행복감을 물론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만나기 전 나름대로 한국의 여러 사찰에 다니면서 기도와 수행에 전념했었다. 『금강경』을 읽고, 108다라니를 하루에 천 번씩 암송하기도 했으며 절 수행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은 했다. 전날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5천배의 절을 한 날이었다. 11월 산사의 밤은 엄동설한이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쉬지 않고 절을 하다가 새벽녘 밖으로 나왔을 때, 절 마당엔 눈이 하얗게 내렸고 투명한 하늘엔 조각달이 걸려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앞산은 나를 보호하고 있었고, 내가 절을 하는 동안 몰래 내린 눈은 나를 위해서였다. 그때의 뿌듯함과 희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심하는 법과 수행의 기본을 어느 정도 닦았다고 보신 나의 은사스님은 내게 간화선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화두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다. 선승들의 법문을 듣고 어록을 보았으나 뭔지 막연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니 화두에 몰입되지가 않았다. 은사스님은 뛰어난 선승이셨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적극적으로 따르지를 못했다. 수행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화선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고 본다.

그런 중에 친구의 권유로 위빠사나 수행을 만났다. 위빠사나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구나 나를 아끼고 보살펴주시는 은사스님께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수행법을 접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위빠사나 수행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뜻밖으로 보리수선원에 온 첫날부터 위빠사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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