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의 생활방식] 생명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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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의 생활방식] 생명을 존중한다.
  • 광덕 스님
  • 승인 2009.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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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의 생활방식

󰊱소중한 생명
불교인의 생활방식의 특징으로 손꼽아야할 것은 아무래도 생명존중이다. 불자라 하면 생명존중을 신행의 제1조로 삼는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결코 죽이거나 다치지 아니한다. 생명이 고귀한 것은 인간에서 지극한 것이지만 그 소중한 것을 인간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서 추구한다. 이것이 모든 중생을 사랑하고 그를 존중한다하는 불교인의 첫째의 신행이 되는 것이다. 계행을 가지는 불자들이 육식을 하지 않고 산목숨을 죽이는 낚시나 수렵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데서 이해가 된다.
불자의 이와 같은 생명존중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중생의 그 모습이 불성이라는 사실이며, 모든 중생은 비록 겉모양은 다르지만 윤회를 통하여 서로 모양을 바꾸고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서로 윤회하고 몸을 바꾸는 가운데 겉모양은 달라도 그 속 생명의 진실성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때로는 형제가 되고, 때로는 부자가 되고, 때로는 한 가족이 되고,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된다. 필경 한 동포, 한 가족, 한 핏줄기라는 사실을 불교인은 알고 있다.
사람이 모양에 차별 없이 그 본성이 불성이며, 저들이 모두가 성불한다는 신앙이다 죽은 목숨을 지혜의 눈으로 볼 때 결코 남이 아니다. 긴 생애 동안에 서로 한 가족, 한 형제였던 것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바닥에는 이와 같은 깊은 신앙적 이해가 깔려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인과다. 산목숨을 죽였을 때 그것은 자비의 종자가 끊어지는 것이다 죽음을 당한 중생에게서는 원결심이 나고 죽인 사람에게는 악한 마음이 싹터서 그것이 성장한다.
그러한 관계는 긴 윤회 과정에서 필경 해소되지 아니하고 악한 원인에서는 악한 과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살생한 인연에서 죽음을 당하는 과보를 낳게 된다는 인과 필연의 법칙을 불자들은 알고 있다. 이것이 또한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였을 때 그에 상당한 과보를 받는다. 죽을 때서 살려줄 때 스스로 또한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는 밝은 공덕을 얻게 된다고 하는 인과응보의 믿음이 불자들 가슴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데서 모든 불자들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며 결코 해쳐서는 안된다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모두 성불한다.
그러면 불자들이 생명존중의 신앙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중생의 참모습이 불성인 것을 믿는 것이다. 중생의 생명이 신성한 근거가 불성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그 귀결로서 인간에게 깊은 신뢰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긍정, 인간 존중, 인간 신성, 인간가치… 이런 것들은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평등한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깊은 중생성에 대한 신뢰에서 가지고 있는 그 높은 가치와 덕성이 억압되지 아니하고 존중되며 또한 그것이 은폐되지 아니하고 개발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론이 나온다. 불교의 교육이념이나, 사회사업 이념의 개념의 근저에는 이와 같은 인간 가치와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 모든 여건에서 인간의 이와 같은 가치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억압이 배제될 수 있도록,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조성적 환경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이켜 볼 때 얼마만큼이나 이와 같은 신성한 인간 가치가 존중되고 있는가, 사람마다 생명 깊이에 깃든 지극한 능력과 가치가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개발될 수 있도록 여건이 보장되어 있는가? 그것이 은폐되고 억압되어서 무고하게 썩고 있지나 않은가? 사회 모든 구조, 모든 환경에서 인간의 깊이에 숨은 커다란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는가? 교육을 받지 못하므로 해서 타고난 천분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은 없는가? 생각할 때 참으로 우리의 할 일이 지극히 큰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불자들은 방생(放生)을 열심히 한다. 죽게 된 미물이나 동물을 살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재일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이 모두는 그대로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고, 나아가 고통에 빠진 생명들에게 고통에서 해방시켜 줌므로써 생명의 빛을 누리게 하는 것이며 불법인연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비의 실천은 이것이 그대로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고 보호하는 결과가 된다. 만약 오늘날과 같이 무자비하게 자연생물들이 멸종에 가깝도록 피해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렵 기구로써 죽이고, 공해로 인하여 생존 조건을 박탈 하므로써 죽이고 대량살생도구를 무제한 방치해서 죽여서 우리 주변이 얼마나 황량한가? 이러한 황량한 환경은 그대로 우리 모든 중생의 생명의 터전을 거칠게 하는 것이고 따뜻한 인간심성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생명 존중의 사회성
생명존중의 가르침을 불자들은 깊이 배워야 하겠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생명이 가지는 높은 가치는 너무나 등한해 있는 것이다. 생명의 존중은 자기 자신에게서 먼저 행해져야 한다. 자신의 생명이 참으로 고귀하고 끝없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서 이것을 개발할 때 세상에 더 없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의 생명 안에 다 할 수 없는 큰 위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긍정하고 개발하고 보장해 준다고 하는 것은 국가 사회 내지 인류 전체를 통해서 끝없는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된다. 안으로 인간의 무한 자원을 포기하고서 자원부족 운운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생명과 가치가 이와 같이 존귀할진대 사회시설로서의 복지시설이 얼마나 값있는 일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인간과 모든 중생들이 함께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 돕고 힘을 합해서 생명의 영광을 누리고 땅의 번영을 키우는 힘을 서로가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불자는 이 점을 알아서 모든 중생의 생명을 아끼고 키우며 그가 가지는 참 빛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이 국토가 아름다운 국토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 모든 구조에서 인간중심의 체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불자는 이렇게 믿고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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