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참회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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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회의 달
  • 관리자
  • 승인 2009.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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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덕 칼럼

나는 요즘 하루해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은 도라지와 더덕 심은 산밭에서 지금 막 뾰족뾰족 돋아나는 새싹 위에 나뭇잎 썩은 부식토를 덮어주는 일로 종일을 보냈다. 계곡은 온통 조팝싸리꽃 향기로 뒤덮였고, 눈을 들면 파란 하늘 아래 죽엽산의 수목들이 갖가지 화사한 신록으로 온 산을 장식하고 있다. 시냇물 소리는 졸졸졸 한가롭고 산비둘기 소리 ․ 뻐꾹새 소리가 앞뒤 산에서 화답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이 달 만큼은 도무지 붓을 들 용기가 안 나서 원고 마감 날이 벌써 지났는데도 날만 새면 호미 들고 밖으로 뛰쳐나와 종일토록 말을 잃고 있다. 엘리옽(T.S.Eliot)이 그랬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우리에게도 4월은 4 ․ 19의 달이다. 3 ․ 15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쓰러진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터진 4 ․ 19로 우리는 민주화의 한걸음을 내딘는가 했으나 일년 후에는 5 ․ 16 쿠데타로 후퇴하고 그로부터 26년 동안의 군사정권 두개 밑에서 민주주의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5 ․ 16, 5 ․ 18, 5월에 일어났던 찬서리 같았던 두 군사정권의 쿠데타의 기억은 나 개인적으로도 가슴이 얼어붙는 느낌으로 회상된다.

61년도 5 ․ 16 직후에 나는 20여일 동안 중부경찰서에서 구류되었다. 민족자주통일(약칭하여 민자통(民自統)) 연맹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이었는데 본인은 그런 단체가 있는 줄도 모르는 형편이었으니 입건될 수가 없었다. (후일 나와서 생각하니 정작 죄목 치고는 내 마음에 드는 죄목이었었는데 애석하게도!). 두 번째 전두환 정권이 일으킨 80년도 5 ․ 18때는 독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서명교수라는 죄목이었다. 이때도 민주주의는 이 나라 헌법의 출발점이기에 입건될 수 있는 성질의 구금이 아니었다. 이때 함께 구속되었던 동료들 반 수 이상이 부당한 제재를 받고 교수 지위에서 해직되었었다.

이제 또 다시 학원가에서 입에 담기도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나 한 학생이 숨지고 또 연달아 분신자살사건들이 일어났다. 30여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섰던 교직자로서, 그것도‘민주화 교수’라는 딱지를 가지고 정년퇴임에도 그 흔한 무슨 훈장 하나 받지 못한 교수의 입장에서 오늘의 이 사태를 바라 볼 때 경악과 분노를 넘어서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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