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을 찾아서] 가야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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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을 찾아서] 가야산 해인사
  • 편집부
  • 승인 2009.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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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을 찾아서

 󰊱 가야산 해인사의 위치와 명칭

    해인사의 주산인 가야산은 성주, 고령,거창,합천 등 4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400m의 이 산은 그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해동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해인사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에서 해인사까지 포장도로가 되어있어 버스로 1시간40분이면 도착된다.

   가야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이 가야국의 땅이었으므로 그 나라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도의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가야산으로부터 온 명칭이라는 것이다.

   해인사라는 이름은 화엄경 가운데의 해인삼매라는 말에서 따다가 부친 이름이다. 바다 가운데에 사물의 그림자가 인발(人影)처럼 비추듯이 부처님의지혜바다에는 온갖 만법이 나타나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창건 역사 및 창건 정신

    해인사는 서기 802년 신라 제 40대 애장와 3년 순응, 이정 두 큰 스님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가야산 해인사 고적에는 해인사의 창건에 대한 설화가 적혀 있는데 그 요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의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중국에 가서 법을 구할 때 지공스님이 유전한 해동답산기를 그의 문도들로부터 전해 받고 귀국한 후 우두산(가야산의 별칭)에 입산하여 초암을 짓고 선정을 닦고 있었다. 때마침 신라의 애장왕후가 불치의 등창병이 낫는데 여러 가지 약을 써도 효력이 없으므로 임금은 신하들로 하여금 큰 스님들의 구호를 찾던 때였다. 어느 날 한 신하가 두 스님께서 선정에 들어 빛을 발하고 게신 것을 보고는 공경예배하며 왕후의 병난 사연을 말하자 스님은 오색실을 주면서 ⌈이 실 한 끝은 궁전 앞에 있는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쪽은 아픈 곳에 대면 나으리라⌋고 말했다. 그대로 하였더니 배나무는 말라죽고 병은 나앗다. 왕은 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 곳 비봉산 밑에 먼저 봉서사(지금의 원당암)를 세워 정사를 겸해 보면서 해인사를 짓고 논밭2500결을 헌납하였다고 한다.

   그 뒤 장구한 역사를 지내오면서 오늘에 이르는 동안 일곱 번의 대화재를 만났다. 그리하여 중건에 중건을 거듭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존 건물은 대개가 200년 전 내외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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