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함께 일구는 광명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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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과함께 일구는 광명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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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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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대도시에는 도심 불교의 산실이자 현장 포교의 교두보로서 포교당 형태의 소규모 사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불교가 더 이상 산중에만 머무르지 않고 많은 불자대중의 삶의 터전으로 친밀하게 다가왔다는 면에서. 또한 사찰이 보다 실천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함께 떠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속에서 서울에만도 크고 작은 포교당이 수없이 생겨났으나 지난 90년 5월.자비광명이 서서히 떨쳐퍼질 예정된 진원지 경기도 광명시에 만들어진 금강정사만큼 지역주민들과의 유대. 알찬 포교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포교당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 포교당의 주지이신 벽암 지홍 스님이 처음 포교당 건설 필요성을 느낀 것은 89년 9월경 당시 포교의 선두주자로서 참다운 선행불교를 표방하고 있는 불광사 청년법회를 담당하시던 스님께서 우리 불교현실 속에서 포교의 중요성과 사회에서 불교가 해야 할 역할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부터라 한다.

사회적 역할을 올바로 수행 할 수 있는 포교당 모습을 생각하며 포교당 건설지역을 물색하게 되었는데 이 사회 내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정 부처님의 법음과 불자들이 보살 행이 필요한 포교당 건설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준비 과정을 거쳐 그 해6월에는 최종적인 건설 예정지 광명시 철산동에 1개 법등모임을 창등하며금강정사는 이 지역 내 전법수행의 발원지로서의 불을 밝힌다.  "광명시에 포교당을 만들기에는 많은 고려가 필요했어요.

광명시는 우선 첫째로 서울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문화적으로 낙후 되어 있었지요. 그나마 조금 상가가 형성된 곳에서도 지역문화 부재 속에 소비적인 문화만이 만연되어 있었고

두번째로는 공단 근처이기 때문에 공해가 극심했습니다. 공해방지 시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별로 공해에 대한 인식도 없었습니다.

 
세번째. 경제적으론 아주 궁핍했고
네번째.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는데 교통문제는 극심했습니다. 또한 교육시설들이 낙후 했구요. 이렇게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통해 할 일이 정말 많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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