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사고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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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사고의 병
  • 관리자
  • 승인 2009.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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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동불서불(東佛西佛)

한국인의 치명적 결점

  학국과 한국인에 대한 탐구의 노력은 아직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 학계의 과제이다.  물론 불경(佛經)의 우화처럼 각 분야에서는 서로의 입장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는 듯한 우(愚)를 반복하고 있지만.......특히 한국적 사유를 논구(論究)하는 작업은 철학. 심리학. 문학 등에서 중점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다.  평면적으로 말한다면 한국적 사고경향의 밑바닥에는 유불적(儒佛的) 인생관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의 퍼센트를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상이란 마치 용해되는 물질같은 것이어서 때에 따라서는 어떤 앙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심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한국적 사고(思考)의 결점으로는 즉흥성(卽興性), 남의 눈치보기, 허세 등이 있고 그 장점으로는 은근과 끈기 등이 열거되고 있다.  나는 그 한국인의 결점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획일성(劃一性)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요즈음은 맣이 나아졌지만, 한동안 서울의 자동차는 온통 검정색 투성이였다.  그것은 한국적 권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획일적 사고의 뿌리는 여전히 그 위세를 발휘하고 있다.  나는 왜 T.V.의 뉴스시간이 꼭 9시여야 하나를 모른다.  왜 양T.V. 에서는 연속극쇼.외화(外畵)등이 똑같은 시간에 배열되어야 하나를 불가사의하게 여기고 있다.  그 내용이나 형식도 전혀 같은 점을 납득할 길이 없는 것이다.  무슨 씨스터즌 ㄴ왜 꼭 같은 옷을 차려 입어야 할까.  자동차의 뒤에는 왜 크리넥스통이 꼭 있어야 하고 영국국기같은 방석이 있어야 할까?  겨울이되면 왜 여자가들은 게슈타포같은 장화를 신어야만 하는지 알 길이 묘연한 것이다.  이런 풍조들은 모두 한국적 획일사고의 일부일 뿐이라고 본다.  우리는 너무 쉽게 결론을 내고 또 개성이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눈에 띄는 사회현상뿐 아니라 우리의정치. 경제.행정속에 은연중에 잠재되어 있다.  인도에서 살 때 내가 얻은 자동차 운전면허증의 갱신일자는 내 생일날이었다.  우리가 단순히 몇 년후 교부받은 날까지 하는 식의 발상과는 전혀 궤(軌)를 달리한다.

  한번은 네팔 국경에서 겪은 일이다.  카트만두인 경우 비자가 없어도 공항에서 바로 일주일 체류 관광비자를 준다.  그러나 육로로 통과할 경우 그 수속은 까다롭다.  또 인도는 단순 비자만을 주는곳이기 때문에 네팔로 건너가더라도 다시 인도로 들어오려면 곤욕을 치뤄야 한다.  외교적 상식이 무지에 가까운 나로서는 그 저간사정을 알 리가 만무하다.

  천신만고 끝에 기원정사와 사위국(舍衛國)을 답사하고 네팔로 가려던 내 계획은 무산될 판이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델리로 다시 돌아가서 인도에로의 재입국 비자를 받아오라고 잘라 말한다.  나는 정성껏 내 입장을 설명핶고, 한참 후에 그는 내 말에 동의하였다.  지금가지 내가 말한 것을 경위서로 쓰고, 또 며칠까지 오겠노라는 각서(覺書)를 쓰면 통과시키겠노라는 답변이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후진국이었지만 행정의 경직성은 없어 보였다.  나의 편의 위주로 가능한 대로 나의 요구를 둘어주려는 방향인듯 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인도적 다양성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Yes냐 No냐 하는 극단 사고 대신에 늘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를 여행합면서 가정 충격적인 일은 결코 소떼나 불결한 생활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박물관에 예외없이 식민통치시대의 잔재가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는 총독의 동상, 일용품까지도 잘 모셔놓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남산 동상을 무너뜨리고, 또 일제(日帝)의 잔재라면 이응 자(字)에도 주눅이 들도록 교육 받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 당혹감은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인도인의 답변은 의연하였다.

  우리가 눈꼽만한 영국이라는 나라에게 통치를 받은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원통하고 챙피하지만 바꿀수 없는 역사적 과거이다.  따라서 그들의 통치현실을 미화하는 일도 가관이지만 숨기는 것도 웃긴다.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시청각 교육으로서 그 실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온통 친일이니 유신잔재니 해서 과거의 사실을 덮어 씌우는 일에만 골몰하다 허심탄회하게 과거는 잘못했다는 식이 아니라 안그랬다.  어쩔 수 없어 그랬다 하는 너절한 변명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획일적 사고와 단순성을 나타내는 일일 수 밖에 없다.

획일사고의 병을 고치는 길

  불교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불교의 다양성이 한국인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개선하는 양약(良藥)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서구적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이 아무리 고원(高遠)하다 할지라도 결국 이 경직된 권위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불교는 어떠한 권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그 획일성의 병을 고치려는 걸음을 걷는다.  예컨대 신라나 고려 때의 경우를 보자.  그 사회에서는 해학의 멋과 관조의 여유가 지배적인 흐름이었다.  마치 신분질서를 따지는 일이 우리 고대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나 이것은 잘못이다.  잘못 수용된 유교의 영향 때문에 이 넘을 수 없는 차별윤리가 우리의 것인양 착각하게 된 것이다.  조선사회에 비해 볼 때, 신라는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가진 시대였다.  성(性)모랄도 놀랄만큼 개방적이었으며, 사회 전체가 페쇄를 싫어하는 체재였다.  이것이 불교와 육의 다른점이다.  유교가 지배자의논리로써 상하의 수직윤리를 강도했다면 불교는 수평윤리를 제시한다.  그 불교적 이상의 모델이 바로 승가(僧伽)였다.  조선조의 유림(儒林)이 불미스러운 당파 놀음으로 일관했던 것은 그들이 수용한 윤리 자체가 선민적(選民的)사상기반을 갖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분과 가문을 목숨처럼 중히 여겼으며, 그것이 전통이라는 무게로 우리 위에 군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승가는 본질적으로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왕족인 자장(慈藏),의상이나 평민 출신의 원호, 헤공(惠空)에게는 다만 부처님의 제자임을 나타내는 석(釋)이라는 칭호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신라 골품사회의 긴장을 푸는 열쇠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신분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매개의 역할로서 승단(僧團)은 의연히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다.  평등이라는 인간이상을 현실로서 실현한 예는 오직 불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예이다.  서양종교도 평들을 말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등은 「믿는 사람」끼리의 평등일 따름이다.  「믿지 않는」 이른바 이방인들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복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불교적 관용이 한국의 화합적 기질을 창조했다면, 여타의 가르침들은 오히려 그 역기능을 보여주지않았나 의심해 보는 것이다.  현대라는 시대는 보이는 신분질서대신 보이지 않는 신분의 격차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구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불신(不信)의 장벽을 쌓아가며, 인간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그 획일사고의 병을 고치는 깊은 관용과 평등을 실현하는 길 뿐이다.  그 고마운 가르침으로서의 불교가 다시 조명되어야 할 필연성이 여기에 있다.  편견으로 닫혀진 마음의 창을 열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들 불자의 화두(話頭)여야 한다고 믿는다.  (佛光)

    • 정병조(鄭柄朝) .경북 영주 출생. 동국대 인도철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과 졸업. 인도 네루대학교 교환 교수 역임. 현재 동국대 문과대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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