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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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물다 가는 곳
  • 관리자
  • 승인 2009.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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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희끗한 하늘, 은은한 눈발처럼 다가오지만 쌓이지 않은 형체가 있다. 세파에 시달린 어머니 이마의 고랑마다 일렁이는 근심의 물결처럼, 농부의 눈에 고여있는 빛깔처럼, 찻집에 앉자 쌓아 올린 연인들의 사랑의 탑. 그리고 그것은 아름답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산다는 것이 어디 자취로 남아야 한다던가 얼룩으로 남아 있어야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인생의 자취나 티끌같은 것에 더 연연해 하는 때가 많다. 황금이나 명성이 낙수물처럼 한 방울씩 떨어져 축적된 자산을 가지고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것은 귀로 판단할 수가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는 분명한 것이기에 가끔 눈물도 흘려야 하고 때로는 미소도 지을 수가 있다.

 세상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과 그 형상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빚어지는 무형의 감정이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하면서 공존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자기가 축적한 재물이라는 형상 속에는 타인의 질시도 미움도 조금씩, 더러는 명성의 소리마저도 귀로 전해질적마다 그 속에는 무수한 무형의 감정이 엇갈려 용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실체하여 확인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을 만족해 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한 치의 소리나 한 자락 빛이 도구로 삶의 중량을 측정하려는 어리석은 착오를 범할 수 있다.

 어느 꼬마의 손에 쥐어져 있는 두개의 은전 중에, 하나는 길에서 주운 것이고, 하나는 부모가 준 것이라면, 그 두 개의 은전의 모습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하나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불안감과 잃어버린 사람의 서운함과 이 사회에서 당해야 하는 곤욕감도 그 내용물로 담겨져 있다. 또 하나의 은전 속에는 부모의 정성과 사랑과 자신의 기대감도 용해되어 있다. 그 두개의 은전의 모양은 같지만 두 개의 형체 속에 담긴 내용은 다르다. 명성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 작은 이름하나 남보다 더 좋게 입에 오르기까지는 조금 더 땀을 흘려야 했던 고통과 어쩌면 타인의 이익을 착취한 것인지도 모르는 그러한 의미까지도 들려오는 소리의 형상속에 무형의 의미가 물들어 있을 수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비추어 주는 것일까. 소리의 형상일까. 소리의 형상에 담겨진 무형의 의미일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그래서 확인 할 수 있는 것과 확인 할 수 없는 것. 거짓으로 꾸며지는 것과 거짓으로 꾸며지지 않는 것. 우리는 이 두개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면서 번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의 거울 속에 내비친 이승의 얼룩은 닦아내면 다시 배이고, 덮어버리면 다시 스며나오는, 타인이 엿볼 수 없는 바람의 형상으로

 머물다 가는 곳.

 일순에 사라지는 모습으로

 찾아 와서

 깊은 여울에 잠기면

 마치 깃털과 같으나

 수면에 떠오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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