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웃음
상태바
마지막 웃음
  • 관리자
  • 승인 2009.06.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의 샘 ● 해는 져도
 
12월은 맑고 투명하다.  열한 달의 삶을 갑자기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충동을 갖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리를 메우는 얼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해 보이지만 한 시각을 보는 입장이 모두 다르듯 그 얼굴 뒤에 숨죽이고 숨어있는 삶들은 모두가 다른 모양을 그리며 12월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을 것으로 본다.
한 해를 막 넘기려는 끝 시간에 나는 죽음을 맞고 있는 청년과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하다가 이국의 명산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이름난 산악인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정상을 눈앞에 두고 손가락에 심한 통증을 느껴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 날의 그 통증을 주던 상처로 인하여 처음엔 손목을, 다음엔 팔의 중간을, 지금은 어깨지 잘라내었지만 죽음은 심장까지 파고들어 해를 넘길 수 없다는 의사의 통고를 받았다고 했다.
에스키모인들에 있어서 죽음은 삶의 불멸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매우 치열하다.  에스키모인들은 생명이 다했음을 감지하게 되면 일부러 백곰에게 잡아먹힌다고 한다.
에스키모인들은 삶의 환경 속에서 썩은 곳을 찾을 수 없다.
영원한 빙화, 영원한 결빙, 썩은 곳이라고는 백곰의 위장 속에서 분해되고 해체되는 것뿐이다.  나의 육신은 해체 된다 해도 후손들이 백곰을 잡아먹음으로 나라는 존재는 유환성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자손들의 삶 속에서 남아서 산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은 유한한 개체적 삶을 백곰의 위장을 통하여 우주적 삶의 무한성을 추구하는 것이리라.
이 청년의 죽음에 대한 이해도 이와 유사했다.  나는 이대로 팔이나 썩어서 죽을 수는 없다고 했다.
산 사나이는 산에서 해체되어야 하며 즉 산악인의 해체는 후손의 산악인에 의하여 재발견되고 다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승과 현실을 드나드는 간혈적 혼수상태에서도 이 청년은 이 말을 하면서는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 청년의 마지막 웃음에서 선명하고 투명한 12월의 냉하고 찡한 겨울산을 그릴 수 있었다.
정상에 부는 바람은 다르다고 했다.  정상의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산 아래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 흙에 몸을 대고 해체되었다가 험준한 산의 모습으로 발견되어지고 싶다고 했다.
병원을 나왔다.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거리를 메우는 얼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해 보였다.
마지막 웃음 뒤에 어린 청년의 영원한 사람은 이토록 치열한데.
마지막 달은 지난 1년을 끌어당기며 뜻 없이 지나가려하고 있다.
 

—————————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귀 안에 슬픈 말있네]를 출간하였다.  현재 형성신학대학 교수로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