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홍 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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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홍 서 원
  • 관리자
  • 승인 2009.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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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심 연작소설

라디오에서는 사홍서원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장중하게 울려퍼 지고 있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사홍서원을 듣고 있던 강여사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해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보살로서의 대서원을 세우고 있는 한 사나이의 비장한 모습을 보고 있는 기분같다고 할까?

사홍서원을 들으면서 왜 비장한 사나이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그건 강여사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남자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비장한 구도자의 이미지는 여성쪽 보다는 역시 남성 쪽이어서 그랬는지···.

사홍서원을 들으면서 순결한 감동에 젖어들던 강여사는 향도 하나 피우고 싶어서 들고 있던 찻잔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향이 있는 문갑쪽으로 다가갔다.

강여사는 문갑 위에 얹혀 있는 쇠로 만든 조그만 거북이 잔등 위에 향 하나를 꽂아 놓고 몸을 돌렸다. 언젠가 조계사 부근에 나갔다가 천원을 주고 사왔는데 수시로 향을 꽂다보니 정이 들어서 이제는 자신 곁에 없으면 안 될 만큼 소중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방안에 향 내음이 은은히 감돌자 마음은 더욱 편안해졌다. 강여사는 맛던 차를 마저 마시면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망중한, 한가함을 즐기는 재미는 각별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바쁘게 움직여서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있다 해도 한가함을 즐기고 있는 내 재미만 할까? 이런 생각에 젖어 있던 강여사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비밀스러운 지혜 한 조각을 은밀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공연히 행복해졌다.

한참 동안 이렇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강여사는 빈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프를 끼운 라디오에서는 청법가, 관세음보살 노래에 이어 보현행원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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