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대승불교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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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강좌] 대승불교의 출현
  • 해주스님
  • 승인 2009.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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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교리 강좌

석존의 깨달음과 초전법륜에 의해 성립된 불교와 불교교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천이 있어 왔음은 짐작되는 바이다.

부처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엄청난 크나큰 사건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원적에 드신 일이라 할 수 있다. 석존의 입멸은 교단사의 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는 설사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크게 걱정될 것은 아니었다. 외도들이 교단을 비난하는 일이 있어도, 제바달다가 500명의 비구들을 거느리고 교단을 이탈하였어도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언제나 부처님께 의논 드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석존의 법력으로 늘 상황은 예전대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반열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심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열반하신 소식을 들은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정비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비 직후 그 자리에서 결집(結集)을 선언한 사실에서도 그 심각성을 추정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집의 시기를 방사(房舍) 수리후인 3개월 뒤로 미루었으니, 결집에 앞서 방사 수리부터 먼저 하기로 합의를 본 점은 석존을 잃은(?) 불교교단을 보는 타 종교인(外道)의 눈을 의식한 소치인 것이다. 율전의 방사건도에 설해진 이 사실은 석존의 열반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자신감을 잃게 하였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결집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법귀의 법등명 (法歸依 法燈明)과 계(戒)를 스승으로 삼으리라는 유훈을 받드는 일이기도 했다. 불멸 후 교단의 의지처로서 스스로의 자신(自己)과 계(戒)와 법(法)이 중시되었고 교단의 존재양식이 계와 법 중심이었다. 그리하여 교단에 있어서 계율과 교법의 상속에 절대적 중요성이 부여되었고 시일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계법의 정통성에 시비가 일게 되어 사자상승의 계보에 의해 분파가 이루어졌다. 불멸 후 100년경 계율에 대한 해석을 달리함에 의해 재차 이루어진 두번째의 결집에 교단은 보수와 진보의 두 파로 드디어 나뉘어지게 되었으니 상좌부와 대중부의 근본 분열이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상좌부와 대중부 내에서도 계와 법에 대한 해석의 상이와 지역의 격차 등에 따라 분열이 계속 되었고 불멸 후 약 500년경(B.C.1세기)에는 20부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들 20부파는 각기 교단의 존재양상을 달리 하였다. 이러한 근본분열 이후 20부파의 형성까지를 부파불교시대라고 부르며 그 이전을 원시불교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원시불교시대 가운데서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이전, 부처님 재세시기를 근본불교시대라고 따로 구분하기도 하며, 부파불교 또한 후에 대승불교도들이 폄칭한 소승불교라는 명칭을 붙여 소승불교시대라고도 부르고 있다.

부파불교시대 말엽, 부파교단에 항거한 새로운 불교운동이 인도 전역 곳곳에서 일어났으니 곧 대승불교운동이었다. 대승불교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13세기경 이슬람교의 침입에 의해 불교가 힘을 잃게 될 때까지 인도에서 대승불교시대는 계속되었다.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대승경전들은 바로 이 시기에, 대승사상을 천양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대승경전에 담긴 대승불교의 사상과 정신을 높이 받들고 굳게 신봉하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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