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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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봄은
  • 관리자
  • 승인 2009.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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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봄을 가꾸는 마음

음력 정월 초하루가 지나고 보름달이 여위어지면 온 들녘은 봄마중하는 풀들로 분주해졌다. 도시생활에 찌든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읊조리며 걸었다. 오랜만에 진 지게마저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목처럼 생겼다하여 새매기골이라고 불려진 골짜기에는 성급한 진달래꽃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주로 빈 밭으로 걸어 갔다. 황토흙이라 고구마 수확이 가장 많이 나던 산밭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땅에 걸신들린 사람들은 문중 어른들의 눈치를 피해서 손바닥만한 빈터만 있어도 억세게 괭이질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산밭을 빌지 않았다.

내 앞에는 항렬상 형님뻘 되는 상수형님과 마을 요령잡이인 방죽골 할아버지 그리고 아랫마을 낯익은 사람들이 걸어간다. 얼마쯤 갔을까. 아버지의 무덤이 보일 쯤이었다. 상수형님이 “힘들지야, 오랜만에 지게질형께?”하고 따스한 눈길을 준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까부터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형님, 진숙이는 시집갔소?”

키는 작지만 대추씨앗처럼 야무지게 살아가는 상수형님은 대답대신 한숨부터 뿜어냈다. 나는 괜한 말을 했구나 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백발인 방죽골 할아버지가 입술을 달삭거렸다.

“갔제, 여간 이쁘드라. 아조 잘 살것여. 너는 으째서 안즉까정 장개를 안 가냐?”

“예, 내년에나 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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