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밥에 발목잡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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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밥에 발목잡힌 인생
  • 관리자
  • 승인 200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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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미안해, 나 먼저 일어날게. 집에 갈 시간이 넘엇어. 저녁밥 해야잖아.”

“너만 밥해야 되는 줄아니? 여기 앉은 우리도 마찬가지야. 밥쟁이 면한 사람 있으면 누구 손들어 봐. 쟤는 조바심을 쳐가지고 우리가지 불편하게 만드네. 얘, 조금만 더있다가 같이 일어나자.”

결혼한 여자들이 모인 자리는 밥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너나 할 것 없이 밥하러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 여자는 “밥하는 사람”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간지가 이미 오래기 때문에 시간이 닥치면 어디에 있든지 여성들은 집으로 가야 한다는 반사작용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가야지.’

할머니들 시집살이에는 밥에 얽힌 눈물바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랑이 시어머니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밥상머리에 앉아 밥맛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말없이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 결과적으로 나름대로의 밥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관록도 쌓이게 되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솜씨가 안정되는 만큼 여성들의 의식과 위치도 집안에서 밥하는 사람에 맞게 틀지워지면서 여성 스스로 주부의 자리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밥타령을 하는 이야기 중에 옛날에는 절밥이 정말 맛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밥은 사실 여성들이 먹어볼 수 있는 모처럼의 외식이 아니었을까? 밥은 ‘밥하는 여자’로서의 한국여성 특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식생활에서 밥이 점하는 위치가 크면 클수록 여자는 질지도 되지도 않게 ‘난들나들하게’밥을 잘해야 여자로서의 값어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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