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은 나의 사명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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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은 나의 사명나의
  • 관리자
  • 승인 200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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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나의 다짐

  천중천이시며 성중성이신 부처님!

  저에게 벅찬 환희를 내려주신 부처님의 성도광명일을 맞이하여 존경하옵는 큰스님과 여러 대중스님들, 그리고 법우 형제 여러분 앞에서 보잘 것없는 내용이나마 말씀올리게 됨을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6.25사변 나던 1950년 서울 돈암동에서 막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피난민과 더불어 청주까지 갔다가 질병과 가난만을 지닌 채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가난과 병고로부터의 탈출이 지상과제였음에도 이재(理財)에 밝지 못하신 아버님의 생활방식 때문에 온 가족은 기약없는 고생을 하였답니다. 본래가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태어난 저는 악식(惡食)으로 인한 위무력증과 황달 및 채독으로 시달리게 되었으며 두 귀는 중이염까지 앓는 병약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세서도 4남1녀의 맏이인 저에게는 가운(家運) 개척의 버거운 짐이 지워졌습니다. 천신만고끝에 읍내의 농고를 마치고 지방에서의 말단공무원 생활 4년을 거쳐 중등교사 자격검정고시 합격으로 68년부터 교단에 서게 되었고 지금은 의정부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정은 저의 일정한 수입이 큰 힘이 되어 남동생 셋은 모두 대학을 마쳤으며 이제는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 가족이 겪은 어려움은 남달랐으며 저희 내외의 신혼은 고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중이염과 위게양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젊음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희망봉을 향한 힘겨운 노를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저는 한학만을 하신 아버님의 전통적인 도덕관과 뜻을 무던히도 충실히 따랐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의 우정어린 충고도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배움에 대한 갈증은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두 동생이 어렵사리 대학을 마치고 막내 동생이 입학하던 해, 저는 37살의 나이로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통신대학을 졸업하고 마침 서울로 이사오게 되어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경기도 이천으로 먼 길을 통근하면서도 심신이 시달리는 것도 잊고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가정적으로 어려움이 닥쳐오면서 평소 강인하다는 저의 의지도 거짓이었다는 듯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무력함이 밀어 닥쳤습니다. 내 이제까지 사심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살아온 것, 모두에 회의를 느끼면서 야속한 마음과 원망심이 점점 불어만 갔으며 가장으로서의 심한 자책감과 좌절감으로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여지껏 옳게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심한 혼란과 갈등속에서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좌절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복적 불교를 믿어오신 어미님을 따라 어쩌다 따라다녔던 기억밖에 없었던 절을 답답한 심정을 달래느라 찾아보았지만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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