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가정주부의 이름 살려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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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가정주부의 이름 살려내기
  • 관리자
  • 승인 2009.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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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여성학을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필자는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한다. 처음에 아주 쉽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시작한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떠들썩하던 강의실이 조용해지면서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써야 하는지의 문제로 끙끙대기 시작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이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니 점점 어려워지더라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번도 자기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쓰라고 해서 새삼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학생도 있다.

나는 가끔 주부들에게 이런 과제를 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를 상상해 본다. 학생들은 '내 이름은 ㄱ이다'라고 서두에 자기 이름을 말하는데 주부들은 어떻게 쓸까? '나는 ㅁ의 엄마인데요'라고 먼저 말하지 않을까?

결혼 후 시골에서 십 년 정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 때 친구 모임에 처음 갔을 때의 어리둥절하고 묘한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부르는 이름들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친구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고 거기 모인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또 이야기 도중에 '○○있잖니'하는데 나중에 친구의 이름을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었다. 알고보니 친구들은 서로 자신의 아이 이름으로 호칭하고 있었고,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결혼하고 '어머니-주부'로서 사회에 진입한 친구에 대한 예의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무슨 댁, 아무개 네'로 불리웠던 것처럼 대학교육을 받은 필자의 친구들도 가족들이 아닌 학교 친구 사이인데도 본인 이름을 부르지 않고, '○○네'도 아닌 자신의 아이와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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