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며느리의 명절, 딸의 명절
상태바
[삶의 여성학] 며느리의 명절, 딸의 명절
  • 관리자
  • 승인 2009.04.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의 여성학

"선숙이니? 설 잘 쇠었니? 나보고 새해 복많이 받으라고? 팔남매 맏며느리가 설 명절에 바빠 죽겠는데 복받을 사이가 어딨어, 너두 병원 갔다 오는 길이니? 말도마, 나도 지금 몸살이 나서 누워 있어. 하루종일 서 있었더니 굴신을 못하겠어. 설 며칠 저부터 장봐들였지, 그저께는 음식 준비했지, 설날 새벽부터 차례 상 준비했지, 그많은 식구들 밥먹고 치우고 나면 과일 내야지.

 돌아서면 금방 점심 때가 돌아오니 또 상 차리고 먹고 치우고 누가 하루 세 끼 먹는 법을 내 놓았는지 먹는 일이 보통 큰 일이 아니잖아. 그리고 숨돌리 틈도 없이 시어른께 새배온 손님들까지 수시로 들이 닥치지.

 애들이 세배 받으라고 부르는 소리도 귀에 들어 오지 않더라니까. 작업복 입은 채로 받을 수도 없고, 절 받자고 옷 갈아 입는 것도 성가시고. 남자들이야 명절이 좋을거야. 오랜만에 형제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서로 반갑고, 음식 푸짐하지, 얼마나 재미있고 좋겠어? 너나 나 같은 며느리들에게야 명절이란 일복 터지는 날이 되는거지. 정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더라.

 남편이 예고도 없이 열 몇 명을 집에 데리고 왔더래. 마른 안주만 조금주면 된다면서 밤 늦게까지 술추렴을 하는 통에 아주 혼이 났나봐. 남편 목소리도 듣기 싫고,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그렇대. 아는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입원실에 들어가서 며칠 안 나올 모양이더라."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주부들의 설쇤 이야기는 일에 치이고 힘들었던 여자들의 명절 이야기로 뜨겁다. 명절이란 남자집 사람들이 모이는 일과 차례상을 중심으로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모인 식구와 손님 식사 및 다과 접대가 내용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주부ㅡ며느리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명절이 요구하는 집안 청소며 음식 준비, 손님 접대, 대식구 먹여주기로 가사 노동의 양이 갑자기 평소의 몇 배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