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의구하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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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의구하신데
  • 관리자
  • 승인 2009.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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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철없던 어릴 적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드나든 고향 마을의 조그만 사찰이 나의 알량한 불심의 원형이다. 그곳에는 그럴싸한 일주문이나 석탑도 제대로 없었고,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중턱에 어느 정도 퇴락한 모습이긴 해도 그윽한 향내음이 가득 서린 고찰이었다.

 어둑한  법당 안에 그야말로 온화하고 신묘한 미소를 머금은 거룩한 상호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고사리 손을 엉성하게 모으고 참배하던 기억이며, 초파일 전날부터 올라가 밤새 연등을 만들어 내걸곤 가득 내걸린 연등사이로 강아지처럼 들락거리던 추억이 떠오르면 나는 마냥 푸근한 동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법당 뜨락엔 옥잠화와 수국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고, 그 어름쯤에 석등이라도 놓였던 듯 싶은 받침돌이 있었다. 또 한가롭게 흔들리던 풍경이며, 퇴색되어 어렴풋이 보이던 주련의 글씨, 아련하게 무지개처럼 여겨지던 처마의 단청 등 그곳의 정경을 떠오리면 금방 이 아수라장의 속세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느라고 저버리고 있던 불연을 새삼 깨달아 회복하곤 한다.

 이렇게 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불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허겁지겁 사느라고 통 그곳을 한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가 오래였다. 남들만큼 불심도 신실치 못한 터이라 나는 생각할수록 크나큰 불경을 저지르고 있는, 내 자신을 절대적으로 놓쳐버리고 있는 아둔패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 봄이었다. 팔순 넘으신 어머니가 나의 이러한 미흡함을 꾸짖기라도 하듯 문득 그 고향 산문을 참배하자고 나를 채근하셨다. 오랜만에 내 영혼의 고향으로 탐방하기로 하고 기꺼이 따라 나섰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릴 적 그 시절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 짐짓 처자식구들은  떨궈두고 승용차편도 마다하고 시오리쯤 되는 그 산길을 걸어가리라 작정을 했다.

 때로는 풀섶에 빨갛게 익어있던 산딸기도 떨어 먹을 수 있으리라. 단걸음에 야간열차를 달려 고향에 닿았다. 어릴 때 그랬듯이 역전 시장터 가게에서 부처님 전에 올릴 향촉도 마련하고 정결한 공양미도 꾸렸다. 마을을 벗어나서 산모퉁이를 하나 굽어들면 거기서부터는 호전한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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