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미술] 석존의 일대기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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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미술] 석존의 일대기와 미술
  • 유근자
  • 승인 2009.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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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미술 / 석존(釋尊)
▲ 그림1>> 위대한 원숭이 왕 본생도, 기원전 1세기 초, Bharhut 출토, 지름 51cm, Indian Museum, Calcutta. ①동족을 살리기 위해 두 나무를 연결하는 원숭이 왕과 방해하는 데바닷타 ②지친 원숭이 왕을 받는 그물 ③원숭이 왕과 원숭이 사냥에 나선 왕과의 대화 장면.

석존은 누구일까?

깨어있는 사람은 늘 자기의 본분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온 이유 또한 잊지 않는다. 석존은 수많은 전생(前生) 중 마지막 전생을 마치고 도솔천에서 흰코끼리로 몸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던 히말라야 근처 카필라국을 다스리던 정반왕을 아버지로 마야 왕비를 어머니로 택했다.

석존은 기원전 566년 화창한 봄날, 현재 인도와 네팔의 국경 부근에서 네팔 쪽에 위치한 타라이(Tara-i) 지역인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다. 한역 불전에서 정반왕(淨飯王)으로 번역된 석존의 아버지인 숫도다나(Sudhodana) 왕의 어원은 ‘흰(Suddha) 쌀밥(odana)’을 뜻한다. 이것은 석존이 태어난 곳이 농업 중심 사회였음을 상징한다.

석존이 탄생했을 때의 이름은 ‘목적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싯다르타(Siddha-rtha)였다. 고타마(Gotama)는 가문의 성(姓)이기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했으며, 붓다가 된 후에는 고타마 붓다(Gotama Buddha)라고 불리워졌다. 또한 샤까(Sa-kya)족 출신의 성자(muni)이기 때문에 샤까무니(Sa-kyamuni)라 했으며, 한역에서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존(釋尊)이라 명명되었다.

석존과 관련된 불교 미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석존을 주제로 한 불교미술에는 크게 사리 신앙에 기반한 불탑, 석존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를 나타낸 본생도(本生圖), 금생 이야기를 묘사한 불전도(佛傳圖), 석존의 영축산에서의 설법을 상징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석존을 주인공으로 봉안한 대웅전(大雄殿) · 영산전(靈山殿) · 팔상전(八相殿) 등의 건축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 후기에 제작된 야외 법회용 큰 그림인 괘불(掛佛)에는, 석존의 설법에 미소로 답한 가섭 존자 이야기인 염화미소(拈花微笑)를 표현한 장면에 석존이 연꽃을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연꽃을 든 석존의 표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예인데, 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석존이 표현되는 불교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불교미술의 시작은 석존이 열반에 든 후 그의 유체를 화장해 수습한 사리를 봉안한 불탑[진신탑(眞身塔)]에서 비롯되었다. 석존 열반 후 불탑은 불교도들에게 생전의 석존을 대신하는 정신적 귀의처였고, 석존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공양을 위해 불탑을 찾은 이들이 석존의 생애를 통해 가르침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효과적으로 석존의 일대기를 표현할 방법을 요구했고, 그 해결책으로 본생담(本生譚, Ja-taka)과 불전(佛傳)을 미술로 나타낸 본생도(그림 1)와 불전도(그림 2)가 등장했다.

 

 

석존이 금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 것은 금생의 수행과 더불어 세세생생 쌓은 공덕의 결과이다. 불교도들은 나라와 시대에 관계없이 석존의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세계를 가시적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고, 불전도와 본생도가 그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바세계에 불국토를 건설하려던 것이 바로 불교미술의 시작으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이런 연유로, 본생담과 불전은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에서 주 신앙대상인 불탑에 새겨져, 불탑을 찾는 이들에게 석존의 일대기를 알리는 안내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왜 우리는 석존의 일대기에 주목해야 하는가? 위대한 성인의 삶은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나침반이고,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인류의 대스승인 석존의 생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불교에 이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불탑, 산치(Sanchi) 대탑

산치의 불교 유적은 슝가 시대(기원전 180년~기원후 72년 경)에 꽃핀 대표적인 불교미술로 인도 말와 지역인 보팔(Bhopal)에 있다. 산치의 불교 유적으로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3기의 탑, 불상을 봉안했던 불당(佛堂),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었던 승원 등의 유구(遺構)가 남아 있다. 유구의 연대는 아쇼카 왕 시대 이후인 슝가 왕조에서 사타바하나 왕조 시대인 고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 경) 및 굽타시대 이후인 중세기(4~11세기 경)의 두 시기로 크게 구별된다.

산치 불교 유적 중에는 3기의 탑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산치 제1탑인 대탑(그림 3)과 제2탑 그리고 제3탑이 그것이다. 산치 대탑은 아쇼카 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의 유구는 기원후 1세기에 증축된 것이다. 산치 대탑의 탑문(塔門) 조각은 인도의 고대 초기미술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1세기 초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남문의 첫 번째 부재 뒷면에 남아 있다. 따라서 산치 대탑은 인도의 초기불교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보고(寶庫) 역할을 한다.

산치 대탑은 인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온전한 형태의 탑이면서 동서남북에 세워진 탑문에는 석존의 일대기와 관련된 불전도가 많이 새겨져 있다. 탑문은 기원후 1세기 경에 세워진 것이지만, 서북인도인 간다라 지방에서 1세기를 전후해 인간 형상으로 석존을 표현하던 것과는 달리, 무불상(無佛像)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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