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포교·삶이 그대로 선(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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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포교·삶이 그대로 선(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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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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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선지식들 1 - 대만 불광산사 개산종장 성운 대사

-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생활선으로 ‘인간불교’ 제창

신도 수 1백만 명, 세계 각지에 200여 개 분원, 170여 개 국제불광협회 지부를 개설해 ‘인간불교(人間佛敎)’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대만 불광산사(佛光山寺)가 까오슝(高雄)현에 산문을 연 지 40주년을 맞았다. 요즘 불광산사에서는 1967년부터 이어온 개산(開山)의 초심을 이어가기 위해 2006년 10월 17일부터 올해 5월 16일까지 ‘조산예불수지(朝山禮佛修持)’가 봉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주 금요일부터 3일간, 1만여 대중이 불이문에서부터 대웅전까지 1시간이 넘게 삼보일배하는 웅장한 행렬은 단일 사찰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불광산사의 저력과 단합을 상징하는 신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2002년 3월과 이듬해 9월, 대만 및 서울 불광산사에서 불광산 개산종장인 성운(星雲) 스님과 인터뷰한 인연이 있었다. 두 번의 친견을 통해, 대만불교가 50여 년 만에 기독교인이 대다수였던 지역에서 인구의 80%가 불자일 정도로 기적 같은 포교성과를 일궈낸 것은 성운 스님이라는 거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그러나 불광산사의 비약적인 성장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편견을 낳기도 했다. 성운 스님의 사상이나 수행력을 전혀 알지 못하고 외형적인 불사만을 보고 ‘포교승’, ‘행정승’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불자들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분별심은 자기를 버린 스님의 크나큰 발원을 알지 못하는 좁은 소견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백만 명의 신도들이 성운 스님을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존경하는 것은 스님의 깊은 수행력과 원력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난 것이다.

필자가 살아 있는 ‘세계의 선지식’ 시리즈의 첫 번째로 성운 스님을 모신 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조화된 불행(佛行) 수행의 진면목을 스님으로부터 엿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운 스님은 입적한 숭산(1927~2004) 스님,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과 함께 선종, 특히 임제종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고승 중의 한 분이다.

좌선, 노동, 포교, 생활이 그대로 선(禪)

알다시피, 불광산사의 대중은 주로 염불선(念佛禪)을 닦는다. 중국과 대만의 선종은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염하며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드는 것이다.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불광산의 종풍이 선종이 아닌 정토종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운 스님은 한국의 조계종과 종조가 같은 임제종의 법맥(48世)을 잇고 있다. 단지 좌선수행 위주의 조계종과는 달리 생활선(生活禪)을 주창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육조혜능 스님과 임제의현 선사의 가풍을 따르는 임제종은 원래 좌선 위주보다는 운력(노동), 법문 듣기, 선문답 등이 어우러진 활달한 동중선(動中禪), 즉 생활선을 표방했다. 따라서 포교와 좌선, 염불을 따로 보지 않는 성운 스님의 수행법은 임제종의 선법(禪法)을 오히려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불교’의 제창은 임제종의 ‘평상심이 도다[平常心是道]’라는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좌선, 노동, 포교, 생활이 그대로 선(禪)임을 강조하는 스님의 법력은 고함(喝)과 몽둥이질(棒)이 난무하는 각고의 수행을 통해 평상심을 체득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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