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불(四面佛)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그 고희를 바로 몇 해 후에 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실 내 자신 무슨 수양다운 수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겪은 바 없다. 허나, 어린 행자들 혹은 젊은 행자들의 존경스러운 모습은 더러 추억에 남아 있다.
1936년 여름 방학, 나는 금강산에 들러 내금강에서도 한결 깊숙한 자리에서 더욱 뾰족한 태(態)를 부리고 있는 보덕굴[무주승(無住僧)의 기도처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칠일기도에 들어가 있던 40세쯤의 비구니께서 딱하게도 밤새껏 측간출입에 경황없으셨다. 이때마다 소녀 시자아이는 극진히도 스승을 부축해 마지않았다. 그 장소라는게, 실오라기 같이 좁은 비스듬길을 30여 미터나 더듬거려야만 하고 또한 발밑 수십 길 아래로는 사나운 명연담(鳴淵潭)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저 어린 친구를 봐서라도 뒤뜰 손바닥만 한 자리에서나마 좀 적당히 치르고서 날 밝기를 기다렸으면 좋으련만 이 청정(淸淨) 불제자께서는 그러지를 못하였다.「부처님 처소」라는 굳은 생각에 겹쳐겹쳐 젖어 있는 그 마음씨. 이것이 곧 연약한 생명의 어께에까지도 무겁게 씌워지는 수양길의 하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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