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 붉은 해야 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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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붉은 해야 솟아라
  • 관리자
  • 승인 2008.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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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여수 돌산도 향일암
▲ 해를 건지러 출항하는 고깃배들. 오는가? 가는가? 오는가? 해를 투망질하기 위해 오늘 신 새벽에도 임포항 고깃배들은 돌거북 긴 목을 끼고 돌아 수평선으로 가고 있다.

길에도 근육이 있다. _

무자(戊子)년 새해, 새날, 새벽, 한강에서 중랑천까지 나는 죽음처럼 고요한 신 새벽 한강 고수부지를 혼자서 걸었다. 새벽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길과 나만의 외로운 조우. 그리고 긴 동행. 그 네 시간 동안의 고독한 걷기는 마침내 죽어 있던 내 길의 근육을 되살렸다. 새해, 새날, 새벽의 그 고독하고 혼곤한 걷기는 내 몸의 피톨에 인생이란 모험의 생기를 다시 불어넣은 것이다.

그 새벽, 나는 도루코 면도날처럼 볼때기를 에는 칼바람 속을 발바닥으로, 허벅지로,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걸으며 흘러가는 한강물에 다짐했다. 올 한 해는 아무리 추워도 너처럼 얼지 않은 근육으로 흘러가겠다고. 그 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짊어졌던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강물 위에 부리고 나만의 길을 나만의 두 발로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그리하여 그 동안 반(反) 생명으로 억눌렸던 내 몸과 마음의 모든 체면과 형식도 길 위에 모조리 부려놓고, 걷고 싶을 때 당당히 걷고 쉬고 싶을 때 당당히, 그러나 편안히 쉬겠다고.

그렇게 내 여정의 지도책과 나침반은 마련되었다. 길과 몸이 지도책이 되고 마음이 나침반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한 방향만을 좇아 열심히 걸어가면 되었다.

침몰하기 직전의 배가 닻을 던지듯 _

첫 여정은 전남 여수 돌산도 향일암(向日庵)이었다. 10대 소녀의 초경(初經)처럼 비릿하면서도 아스라한 몸과 마음의 관능을 향한 첫 여정으로 향일암 길을 택한 것은 15년 전 그 길의 싱싱하고 통통했던 육질(肉質)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1993년 겨울,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이라는 반(反) 삶의 늪에 깊이 빠져 있던 나는 침몰하기 직전의 배가 닻을 던지듯, 새로 뜨는 해를 안아보기 위해 간장 종지만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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