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가 인도한 정법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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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가 인도한 정법광명
  • 관리자
  • 승인 2008.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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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수기

     [1] 감사하는 불법인연

   생각할수록 부처님 법문 인연이 중한 것을 생각합니다. 아직 햇병아리 불자를 간신히 면한 지금이지만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곡절을 겪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그 시간과 곡절이 저에게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제가 불법을 만나 바르게 성장하기에는 꼭 겪어야 했던 과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33세 때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만난 것이 법당에 나가게 된 첫 인연이었고, 그 뒤에 별다른 성장 없이 지내다가 모진 병고를 만난 것으로 해서 불광법회를 만나고 건강과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바 없이 세상을 살아오다가, 불법을 만남으로써 정말 귀한 생명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하루하루를 믿고 닦아서 기쁨과 보람의 하루하루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믿음의 자취를 돌이켜보니 무엇보다 불보살님의 지극하신 은혜에 고마움이 앞섭니다.

   나무석가모니불

     [2] 천주교 신앙 30년

   저는 1935년 서울 서대문구 만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로 50세입니다. 아버님께서 사업을 하셔서 별로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성장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저는 당연히 태어나기 전부터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태어나면서 영세를 받은 이름이「마리아」입니다. 성장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만리동 성당에 열심히 나갔습니다. 26세 때 결혼하면서도 신랑 신부가 함께 천주교 신자가 될 것을 신부님 앞에서 다짐하고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열심히 성당에 나갔습니다. 시가는 조상 대대로 유교 가풍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특정한 신을 믿는 종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제가 성당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부부는 한결같이 성당에 나가고 저희들의 마음도 천주교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1남 1녀를 낳아 기르면서 자녀들까지 모두 천주교 영세를 받도록 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종교에 대한 특별한 주장도 없으셨으므로 저희들은 별 탈 없이 지내왔으며, 남편의 사업도 순탄하여 윤택한 생활을 하며 지내왔던 것입니다

   이런 평화가 흐르기도 7년, 저에게는 갑자기 파탄의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결혼한 지 7년 이 되던 1968년 남편은 심한 감기로 눕게 되었는데, 약국에서 조제한 감기약이 약물 중독을 일으켜 훌쩍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천벽력이라고 하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하늘과 땅이 무너졌다는 표현도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33세였는데, 6살 난 아들과 5살 난 딸을 부둥켜안고 절망의 늪 속에 빠졌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속에서 정신없이 남편 상을 치르고, 살던 집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슬픔을 이기고 어둠에서 벗어나 어린 것들과 조용히 지낼 것을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죽기 3일 전에 하는 말씀이「나는 절에서 휴양을 해야겠다.」하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하늘이 무너진 변을 당하고 보니 신도 사후의 영도 생각할 여지없이 아픈 가슴을 안고 몸부림쳤습니다.

     [3] 절을 찾은 사연

   다른 곳으로 이사한지 한 달쯤 뒤의 일입니다. 하루는 뜻밖의 낯선 젊은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은 그전 저희 집을 산사람이 다시 세를 놓아서 그 집에 세든 사람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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