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業人의 능력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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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業人의 능력 개발
  • 관리자
  • 승인 200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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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불교신앙

 산업사회를 특징지우는 말에 「우승열패(優勝劣敗)」라는 말이 있다. 즉 능력 있는 자가 이기고 능력 없는 자가 패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생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산업사회에서 능력 없는 자가 이길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산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하여는 그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여야 한다. 그런데 불자에게 있어서는  이 능력 개발의 의미가 좀 차원 높게 다루어져야 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첫째로, 능력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이 문제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생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에서 그 수 많은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하여 그 「전력(戰力)」을 키운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능력은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능력과 그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전력」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이러한 「능력」은 「적」을 절대 전제로 하고 쓰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본래 「여래가 충만하신 세계」「불보살과 함께 사는 인생」이라는 세계관 내지 인생관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신앙에서는 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이 있다는 전제 밑에 사용하였던 용어인 전력이라는 의미의 능력은 그 개발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불자에게 있어서의 능력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위이익일체중생응여시보시(爲利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ㅡ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하여 응당 이와같이 보시하느니라」고 가르치신다. 여러번 보아온 바와 같이 우리의 직장 생활은 얼핏 보기에는 자기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보여져 지극히 개인 이익적 삶인 듯 보일지 몰라도 그 직장이 사회에 공급하는 상품이나 용역이 모든 동포들의 생활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으므로 그 직장에 충실하게 근무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국민들에 대한 큰 보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직장인에게 있어서는 그 직장을 위하여 충실하게 일하는 것 말고 별도의 보시는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직장 생활을 보시로 알고 해갈 때「일체 중생을 이익하게」한다는 것을 그 근본에 두라는 것이다. 불자에 있어서 능력이라는 말은, 그러므로 남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힘이 아니라 자기의 직책을 충실하게 수행할 힘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러한 능력의 개발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겠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가 생각되어질 수 있다. 그 하나는 기술상의 문제요, 또 다른 하나는 인간 관계의 문제이다. 기술상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자기 직책과 관련되는 전문 지식을 의미한다. 직장에 봉직하는 사람에게는 그 직장의 조직표상의 직책이 부여된다. 그리고 그 직책은 그 나름대로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게으름 없이 갖추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남들보다 내가 더 나은 대우를 받겠다는 생각과는 관계없다. 내 자신을 키워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음으로 인간 관계의 문제는 상 . 하 동료의 문제로 나누어서 생각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상급자와 사이 좋게 지내기는 썩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급자는 나에 대한 명령권과 감독권을 가지고 내 생활을 간섭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업무 수행 도중에 인격적인 교섭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경우 상급자의 몰인격적 활동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급자에게는 자기가 어느 정도 자유권을 행사 할 것처럼 착각하고는 상급자에게서 받은 어려움을 하급자에게 곧바로 되넘기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불자로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자에게 있어서 그 기본자세는 일체 중생에 대한 공경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웃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그 지위가 오직 상위이기 때문에 경의를 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자세로서 생명존중이 바탕이 된 참 공경이어야 하듯, 아랫사람에 대하여도 지위와 관계 없는 인격 존중이 앞서야 하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가르치신 상불경(常不輕)보살의 수행을 우리는 직장에서 실천하여야 한다. 사람을 그 지위나 겉모양 또는 능력 등에 의하여 차별하지 아니하고 그 본질인 불성(佛性)만 보고 그에 대해 예배 공경하는 능력을 우리는 개발해 나아가야 한다. 불자의 생명적 가치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뿐이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그로 하여금 무상 불도(無上佛道)를 성취하게 하는 일만이 불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오직 한 가지의 목적이다. 그러한 까닭에 내가 만나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공경심을 갖게 되는 내부적인 힘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것은 나의 내면 세계에서 이룩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 세계의 자기 성장은 나의 주변에 있는 거칠은 형제들에 의하여 촉진되어지는 것인 까닭에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그들은 결국 나의 「상불경(常不輕)보살」 수행을 도와주는 분들로서 고마울 뿐인 것이다. 그리고 동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그 기쁨을 함께 하며 슬픔을 나눈다. 그러면서 시기나 질투없이 그의 성공과 영광을 비는 큰 마음을 나에게서 키워가는 능력 개발, 얼마나 멋있는 인생인가?

 세째로는 실업인으로서의 예지능력의 개발이나 산업사회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직위가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현상 세계 이상을 보는 예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최고 경영층에 속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부 말단의 감독자 또는 기능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현상 세계에만 눈을 돌리고 있을때 뜻하지 아니한 좌절을 겪게 된다. 현재의 성공에 만심(慢心)을 갖게 되거나 또는 반대로 역경에 말미암은 실의가 그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실업계에 나섰으면 예지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 예지능력은 논리적 학구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능력의 뿌리를 저 깊숙한 여래의 세계까지 뻗쳐 내려가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래의 세계는 일체 중생의 이익이 원천이 되는 세계이므로 개인의 이익이나 경쟁 상대자의 패망을 희구하는 중생적 세계와 공존하지 못한다. 중생적 세계는 충돌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현상 생활의 여러가지 충돌을 피할 길 없이 겪어가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관념이 고수된 상태에서는 남에 대한 공격의 재료밖에 생각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여기에는 예지능력이 발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지능력은 이기주의의 포기와 일체 중생에 대한 무한한 축복으로 여래의 세계에 내 상념의 뿌리를 내려야 비로소 얻어진다.

 기업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고객은 자기들의 수요 내지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급에 의해서 창조됨은 말할 것도 없다. 시민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 수요에 대한 예측, 이것은 영감에 의한 예지로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지능력은 불자들의 매일의 일과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기적 생활의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고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원을 발하며 불보살과 함께 있음을 자기 심증에 확인하는 시간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져야 한다.

 불자인 실업인들은 일과를 정하여 놓고 그것을 꼭 지켜서 우리의 능력을 개발하자. 불자에게 있어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일」을 해가는데 불가능이란 아예없는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상대 못할 상사, 부하, 동료는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남김 없이 제도하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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