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불연(佛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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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불연(佛緣)
  • 최세화
  • 승인 200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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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직계(直系) 먼 조상에는,

「불자불과만리분창외(佛者不過萬里奔蒼外) 일이호승구중귀야(一二胡僧口中鬼也). 사기재야(使其在也) 신불복선왕지의(身不服先王之衣) 구불도선(口不道先) 왕지언(王之言) 행불궤선왕지칙(行不軌先王之則) 직시교화중(直是敎化中) 이물이(異物耳)............」

 (부처라는 것은 만리 땅 먼 곳의 한두 호승의 관귀(串鬼)에 불과하니라. 그것이 있으매 몸에는 선왕의 옷을 입지 않으며,  입으로는 선왕의 말씀을 이르지 않으며,  행실은 선왕의 법도를 따르지 않으니 이는 곧 교화중의 이물일 뿐이로다............)

로 시작되는 배불(排佛)을 논한 「훼불문(毁佛文)」두 편을 지어, 그것이 우리 가보(家譜)에 소중히 전해지고 있는분이 한분 계신다.

 이분은 바로 봉암군 최원개(鳳巖君 崔元凱)라는 분인데 세상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위태롭던 여말(麗末)에 특히 승(僧) 신돈(辛旽) 일당의 정치 단단(壇斷)에 항거하였고 마침내 신돈의 비첩(婢妾) 반야(般若)의 소생이라고도 하는 우왕(禑王)의 등극에 이르자, 정二품 평장사(平章事)의 높은 벼슬을 헌신처럼 버리고, 향리인 장단 봉암동(長湍 鳳巖洞)에 돌아와 신흥 유학인 정주학(程朱學)을 전수(專修). 강론(講論)하여 이를 신장하고 문하에 권중하(權仲和), 이첨(李詹), 하륜(河崙)등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명사를 배출하였다.

 이분이 정(程) . 주(朱)의 성리학(性理學)에 경도(傾倒). 심취되었으리라는 것은 혼인관계에서도 그 일면이 엿보인다. 그것은 그분이 성리학자로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세우고 행교를 설치하여 유학을 진흥시킨 여말 충신 정포은(鄭圃隱)의 종질녀에게 장가드신 것이다.

 꼭 이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어떻든 우리 가문은 대대로 숭유(崇儒)의 집안으로 호불(好佛)한 이는 고사하고 불교에 대해서는 그저 거부 반응을 일으켜 왔던 것이다. 

 나도 어려서 이런 가풍 속에서 자랐고, 한문을 좀 읽을 수 있게된 뒤부터는 스스로 「훼불문」을 읽기도 하여, 은연중 배불의 가통이란 인식과 함께 불교에 대해서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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