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쳐서부처되는것이아니라부처로살때부처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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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쳐서부처되는것이아니라부처로살때부처가된다
  • 관리자
  • 승인 200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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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쳐서 부처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로 살 때 부처가 된다!]

우리 불자님들이 착각하고 계신 대표적 사항 하나가,

‘깨쳐서 부처되는 줄’ 아시는 것입니다.

아니, 깨치기 위해 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목숨 걸고 정진 중엔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실상은 깨쳐야(見性)만 부처되고 깨치지 못하면 부처 못 되는 줄 아는

그 ‘한 생각’으로 인해 천지가 요동하고 무명의 먹구름이 일어나며,

부처와 중생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쳐야 부처되는 줄 알지만, 깨치지 못해도 우리는 부처입니다.

깨쳐서 부처되신 분은 석가모니불 한 분으로 족하십니다.

석가모니불이 깨쳐서 성불하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함께 깨침의 세계로 이미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깨쳐서 부처되려 할 것’ 이 아니라,

‘부처로 살아감으로써 부처되는 불교’를 해야 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어째서 깨치지 못해도 부처냐?

그것은 부처와 우리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주인과 손님(主客)이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는 주객이 함께 갑니다.

만약 주객이 분리된다면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불하는 부처가 따로 있고 성불 못하는 중생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정통 불교가 아닙니다. 사이비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밝은 스승들이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

또는 마음을 떠나 정토를 구하지 말라,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해도 아미타불을 부르는 내가 따로 있고 그 염불을 듣는 부처가 따로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벌써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게 됩니다.

비록 법장비구의 서원으로 극락정토가 십만억 국토를 넘어 실지로 존재한다 해도,

내가 죽어서 그 정토를 여행해서 가는 것이지(化生)

지금 이 자리에서 정토 운운은 말도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역시 올바른 정토 신앙이 아닙니다.

아미타불과 내가 한치의 간격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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