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사와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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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와 관세음보살
  • 관리자
  • 승인 2007.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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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영험기

     1. 부처님 은혜 속 육십 생애

  내 나이 벌써 육십에 두귀가 달렸다. 치악산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숲과 더불어 나도 커왔다. 산천은 울울창창 청기를 더해가는데 나는 언제부터인지 허리가 꾸부러졌다. 이 절에서 태어나서 이 절에서 성장하는 동안 염불소리가 자장가처럼 귓전에 울려오는데 나는 어느덧 늙은이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이래서 인생은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것일까.

  부처님 슬하에서 평생을 지내 온 나에게 있어 내가 변하고 세간이 변하고 산천초목이 다 변하여도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젊어서 경을 배우고 염불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며 큰 법당을 맡아 시봉하는 노전을 지냈는가 하면 감원도 총무도 여러해 동안 맡아왔다. 그동안에 우미한 내가 오늘까지 부처님 모시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력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재난을 막아주시고 우미를 깨우쳐 주셨던 부처님의 은혜는 참으로 망극한 바가 있다.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 속에서 겪었던 일 중 몇 가지 기억을 더듬어 말해보고자 한다. 불보살님의 지극하신 가호력을 믿는데 얼마간이나 보탬이 되길 바라서다.

     2. 신비스런 이적들

  벌써 35년 전 일인가 한다. 그때는 내 소임이 노전이었다. 깊은 잠에 들어 있는데 꿈에 백발이 성성하고 사뭇 기품이 넘치는 장중한 몸매의 한 노장님이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든 나의 옆구리를 두 손가락을 세워서 꾹꾹 건드리며 "웬 잠을 이렇게 자나?"하신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내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다. 시계가 잘못되었는가 하여 바쁜 걸음으로 큰 시계를 보러 큰방 문을 열었을 때다. 연기가 자욱하여 방안을 분간할 수가 없다. 아랫방 문을 열고 보니 아랫목에서 불길이 확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큰 방 구둘을 뜯어 새로 하고 방을 말리느라고 통나무를 아궁이에 가득 지펴놓은 것이 과열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절 큰방 벽이 송판이지만 그때도 그랬었다. 혼비 백산하여 물통을 들어 부어 불을 잡았다. 만약 일분만 늦었어도 절은 다 타버렸을 것이다.

  이것은 육이오 나던 해의 일이다.

  큰방에 모신 관세음 보살은 내가 아는 한 구룡사와 함께 역사를 같이 해온 부처님이시다. 그 단정미묘한 상호에서 나는 광명과 신기로울만치 자비를 머금으신 미소에서는 정녕 천경만론이 필요없이 말없는 큰 설법으로 우러러 보는 이를 경복하게 한다. 그때의 주지스님이 횡성에 포교당을 짓고 관세음보살을 모셔갔다. 아무리 포교를 위한다고 하기로서니 내 마음은 자비하신 어머니가 말없이 훌쩍 떠난 허전함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주지스님 하시는 일이라 아무말 못하고 날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 얼마 있자 주지스님에게 원주군수로부터 출두 요청이 왔다. 원주로 군수를 만나러 갔던 주지스님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그 당시 원주군수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특별한 신암심이 있던 분은 아니였다. 그런데 한번은 꿈에 거룩한 성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구룡사 관세음보살이다. 지금 횡성에 나와 있는데 내가 여기 있을 수 없다. 곧 구룡사로 돌아가야겠다"한다. 꿈을 깬 군수는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하루를 지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또 같은 꿈을 꾸었다. 이러기를 세번이나 거듭하고 보니 군수도 크게 긴장하고 구룡사에 무슨 사고가 난 것으로 직감했다. 주지를 불러 알아보니 원주 군내의 부처님을 무단히 횡성군으로 옮겨갔던 것을 알고 이것을 필시 군수 자신에게 주신 성인의 가호력이라 생각하고 주지를 크게 책망하였다. 그리고 즉시 관세음보살을 본래의 곳으로 모셔 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주지가 7일간 구류를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구룡사에 관세음보살을 옮겨 모신지 사흘만에 횡성 포교당은 폭격을 맞아 전소되고 말았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신도들은 한편 놀라고 한편 다행히 여기면서도 주지에 대한 이의가 분분했다. 그리고 부처님을 모시기 위하여 공양금을 모아서 관세음보살 공양답을 장만했었는데 그 때 원주 군수가 크게 협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약 50년 전 일이다. 그때도 내가 노전이었다. 마침 4월 초파일이어서 성대하게 봉축식을 가졌고 등도 많이 밝혔다 이런 날이면 불을 살피느라고 모든 대종이 제각기 불침번을 하는 것이지만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새벽이 되니 전날의 피곤이 겹쳐 제각기 이구석 저구석에서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큰방 탁자 밑에서 졸고 있었다. 그런데 꿈결에 신장단 탱화에서 본 것과 같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9척이나 되는 신장님이 창끝이 시퍼렇게 번뜩이는 창을 들고 나에게 하는 말이 "아직도 왜 이러고 있는 거냐?"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 보니 탁자 밑에서 졸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이미 세시다. 목탁석 할 시간도 없어서 급히 목탁으로 [기침석]은 울리고 나서 쇳송을 하려고 신장단 앞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신장단 탁자위에 어느 신도가 등을 놓아둔 것이 초가 흘러내려 거기에 불이 옮겨 붙고 있었다. 내가 종망치를 동댕이치고 물을 가지러 달려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일촉즉발의 순간에서 불을 잡았던 것이다.

  이것은 얼마전 종단에 불교정화의 물결이 한참 일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도 내가 노전을 맡고 있었다. 이것도 꿈인데 우리 구룡사 대웅전 세분 부처님이 탁자 아래 법당 마루바닥에 내려와 계셨다. 내가 아무리 탁자 위로 부처님을 모셔놓고 나면 또 내려와 계셨고 또 다른 부처님을 모셔 놓고 나면 다른 부처님이 또 내려와 계셨다. 할 수 없어서 법당 밖으로 뛰어나와 주지스님을 청해갔다. 그랬더니 법당마루에 앉아 계셨던 세분 부처님이 주지스님을 보자 몸을 돌리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꿈을 깼다. 날이 밝아 주지스님께 꿈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변고가 있을 모양이니 대책을 하자고 하였다. 그랬더니 주지스님은 "쓸데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무심하였는데 그 후 주지는 바뀌었고 스님은 절에서 몰려나가게 되었다. 

     3. 자비신력은 영원하다

  꿈은 허사라고들 한다. 그러기에 지금 말한 것들도 허황한 얘기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꿈은 꿈이지만 꿈이라는 의식차원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세계, 즉 우리의 현존 세간에 앞선 원인세계가 비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부처님 앞에 산다는 것은 한낱 나무등걸이나 흙덩어리 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더라도 불보살의 자비위신력의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감싼 큰 은혜의 물결이 부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모르는데 상관이 없다. 진실로 중생을 위하여 세간을 위하고 불법을 위하시는 큰 성인의 역사는 간곡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의 체험으로 느낀 것을 털어 놓는다(文責記者).

     * 구하라, 행동하라, 그러면 얻으리라.

     * 모든 경험은 영혼을 교육시키는 과목이다.   <佛光銘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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