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숴지지 않는 문
상태바
부숴지지 않는 문
  • 관리자
  • 승인 2007.11.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禪心詩心

  형식과 내용은 서로 도우면서 서로를 굳건히 하는 것이기는 하나 때로는 형식이 있어 빈약한 내용을 위장할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내용의 견고를 위하여 형식을 무니는 용기도 필요하겠다.

  우리가 의식이나 통일된 질서를 필요로 하는 생활에는 제복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군복이요, 종교적 의식에 있어서 예복이나 제복이다. 스님의 납의(衲衣)는 그 자체로서 스님이기를 강요당한다. 따라서 납의라는 형식 요건이 스님의 내용을 구비하도록 한다. 여기에서 형식과 내용은 상보적 화합이 된다. 하지만 실상이 없는 내용을 이 법의가 위장했는지도 모를 위험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년 전 학생들의 제복을 없애면서 찬 · 반의 쌍곡선을 그려왔다. 오늘에 있어 그 결과는 찬 · 반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내용이 견실한 학생은 제복의 형식적 강요없이 자신의 내실과 자제라는 자아가 형성되지만, 내실이 없는 학생에게는 형식이라는 외적 제약이 없기에 점점 자제를 잃어 학생이라는자체마저 상실해 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집착을 여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을 이름이겠지만, 이러한 형식에 자유로울 수 있음이 선(禪)일 것 같다. 선사들에게는 이 형식에 매이지 않음이 있어 초탈이기도 하고 세속적이기도 한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숭악(崇岳)의 혜안국사(慧安國師)가 북종(北宗)의 신수(神秀)와 함께 무후(武后)의 부름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무후는 두 스님에게 목욕을 하게 하고 궁녀들을 시켜 시중들게 하였다. 그러나 국사께서는 태연자약하시며 전혀 동요됨이 없었다. 이에 무후가 감탄하여 이르기를 목욕물에 드는 것을 보고 비로소 큰 문이 있음을 알았다 하였다.

  그 뒤 무진거사(無盡居士)는 이 사실을 두고 송시를 지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