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히 내 들었노라(如是我聞)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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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히 내 들었노라(如是我聞)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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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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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강의/소천(韶天)원각경 강의

해설

문성취(聞成就)인 ‘내 들었노라’에 대한 대부분의 해설은 사실측면에서 ‘아난이 송출(誦出)하는 경(經)은 부처님께서 친히 설(說)하신 바이고 아난이 자의(恣意)로 설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함’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함허선사께서는 ‘내 들었노라는 이러〔如是〕한 법(法)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음을 이른다.〔我聞者謂如是之法我從佛聞也〕’고 해설한다.

용성(龍城) 선사는 이러한 사실적 해설에서 나아가 ‘나와 내가 없는 것과 이 둘이 아닌 참내〔眞我〕가 들은 것이며, 근경(根境)이 하나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닌 묘판 귀로 진속(眞俗)이 걸림 없는 법문을 들었다. 함이니라.’고 이치적으로 풀이한다. 소천 선사께서는 ‘나〔我〕’를 이치적으로 풀이했듯이 ‘들었노라’도 이에 상응한 해석을 펼쳐 보이신다. 강의 내용을 살펴보자.

강의

망상번뇌가 쉬고 피아관념이 없어져서 생기게 된 깨끗한 마음 터는 아난의 ‘나’일 때에 석가모니의 ‘나’이요, 일체 중생의‘나’인 것이다. 이 까닭에 석가모니께서 이 원각경을 말씀하실 때에도 ‘이’인 나를 ‘러’히 하시어서 말씀하신 것이오. 아난이 이 경을 들을 때에도 ‘이’인 나를 ‘러’히 하여서 들은 것이다. 중생들도 ‘이’ 자루를 잡아 ‘러’히만 할 수 있다면 깨닭을 수 잇는 것이다. 이러므로 ‘들었노라’는 ‘러’히 했노라요, ‘내 들었노라’는 ‘이’를 ‘러’히 했노라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러히 내 들었노라’는 석가모니가 ‘이’에 ‘러’히 하시어 설하신 원각경을 아난이 자신도 ‘이’에 ‘러’히 해서 ‘들었노라’하여 원각경 뜻이 ‘이러’함인 것을 아난이 갈파(喝破)한 것이다. 또 이 경을 엮은 것이니 후래중생(後來衆生)도 ‘이’에 ‘러’히 하여 ‘읽을 지어다’를 암시한 것이다.

아무나 ‘이’에 ‘러’히 할 줄만 알면 된다. 단지 문제는 어떻게 ‘이’를 ‘러’히 할 건가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깨끗한 마음 터로 듣든, 보든, 생각든 하기만 하면 된다. 깨긋한 마음 터는 ‘이’이요, 듣고 보고 생각하고는 ‘러’히 함인 까닭이다. 또 어떠한 것이 깨끗한 마음이고 ‘러’히 함인가? 이에 대하여서는 경전체(經全體)를 통(通)하여 논란(論難)될 것이니 보면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며 논란된 ‘이러히 내 들었노라’의 뜻은 적어도 제일의제(第一義제)를 이치면(理致面)에서 후벼서 흠집만 냈다 할 수 있다. 하나이나마도 대승근기(大乘根機)가 아니면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이보다 단을 낮추어서 설명하자면 해설은 달라진다.

만일 사실면(事實面)에서 교가적(敎家的) 해석을 요한다면 이렇다. ‘이러히 내 들었노라’는 편집자인 아난으로서 이 적음은 자신의 생각대로1) 적음이 아니요, 부처께 들은 대로 적노라 한 뜻이다. 이는 후래중생으로 신심을 갖게 함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부처님께서 열반 당시에 제자들이 묻는 말이 “경을 어떻게 편집하오리까?” 한 데 대해서 “이러한 법을 내가 부처님에게 들었노라” 하고 편집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이치면(理致面)으로나 함께 맞는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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