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욕을 초월한 덕숭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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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을 초월한 덕숭낭자
  • 관리자
  • 승인 2007.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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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자리한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서 거의 40여 개 사찰에 달하는 말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해인총림 영축총림 조계총림과 더불어 4대총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총림의 이름은 ‘덕숭총림’이다.

수덕사 대웅전과 수덕사 벽화는 각기 국보급에 해당하는 문화재로서 대웅전이 국보 49호이고, 벽화 또한 비록 모사도이기는 하지만 1308년에 그려진 것으로 40여 점이나 된다. 수덕사 조인정사 앞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데 높이가 4미터나 된다. 그리고 산내 암자로는 견성암, 정혜사, 금선대, 환희대 등이 있으며 견성암은 비구니 선원으로 유명한 반면 정혜사는 비구 선원으로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특히 경허 스님을 비롯하여 만공 스님이 주석했던 도량으로 참선하는 남자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도량이다.

이 수덕사가 창건된 기록은 정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는데 나는 그 많은 설화 가운데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에 관한 설화를 들고자 한다.

수덕사는 서기599년(백제 법왕 1년)에 지명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당시 덕숭산 아래에 ‘수덕’이라는 귀공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지체있는 가문의 젊은이로서 지위와 부를 겸비했었다. 특히 사냥을 즐겨하여 덕숭산에 올라가 사슴과 노루, 토끼등을 잡곤 했다.

이 수덕도령과 이웃한 마을에 ‘덕숭’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할멈 한 사람과 함께 삯바느질이며 기타 허드렛일까지 도맡아가며 연명을 했다. 그러나 천성이 본디 아름답고 품격이 고매하여 인물 또한 출중하여 많은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대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수덕도령이 몇몇 시종을 이끌고 덕숭산에 올라 노루몰이를 하던 중이었다. 수덕은 노루를 향해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곁에서 지켜보는 시종들도 땀을 쥐고 숨을 죽였다. 그런데 수덕은 당겼던 활시위를 놓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여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만약 노루가 그 자리에서 한 발짝 이라도 움직이기만 한다면 화살은 여인에게 꽂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덕은 활을 거두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수덕이 다가가는 거리만큼 여인의 모습도 이상하게 멀어져만 갔다. 두 사람의 거리는 여전히 똑 같았다. 수덕이 말했다.

“낭자, 낭자는 어디 사는 뉘신데 이런 산 속에 계십니까?”

하지만 여인은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숙이고 모로 서 있었다. 수덕은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덕은 가슴이 뛰었다.

“실례지만 낭자는 뉘신지요? 어찌하여 이 깊은 산 속에 계십니까? 행여나 길을 잃고 방황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여인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옵니다. 소녀는 이 산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조용히 명상에 들어 있자니 도령님께서 사냥을 나와 죄없는 소중한 생명을 빼앗게 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이곳에 온 것입니다. 소녀의 이름은 ‘덕숭’이라 하옵니다.” 수덕은 덕숭낭자의 말을 듣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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